온힘을 다해 날개를 젖치고 총배설강이 잘 보이도록 엉덩이를 치켜든 느시 수컷과 이를 들여다 보는 암컷. 사진=프란츠 코박스
느시는 우리나라에 19세기 말까지 흔하던 겨울철새이다가 이제는 거의 보기 힘들어진 멸종위기 조류이다. 수컷은 몸길이가 100㎝에 이르는 큰 새로 주로 초원지대에 산다.
느시는 일부다처제 조류여서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해마다 짝짓기 철이 되면 늘 모이는 곳에서 수컷들의 요란한 과시 행동이 벌어진다.
수컷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경쾌한 동작으로 스텝을 밟으며 매력을 뽐낸다. 암컷은 아주 까다롭게 군다. 접근하는 수컷 10마리에 한 마리꼴로 교미를 허락받는다.
그런데 느시의 짝짓기 동작에는 매우 특이한 행동이 포함된다. 수컷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엉덩이를 한껏 들어올리면, 암컷은 마치 무엇을 조사하듯이 수컷의 총배설강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부리로 콕콕 찔러보기도 한다.
조류의 수컷은 따로 음경이 없기 때문에 배설과 생식을 모두 담당하는 총배설강을 암컷의 것과 접촉시켜 정자를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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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연구자들은 느시의 이런 수수께끼 행동의 비밀을 밝히는 논문을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 <플로스 원> 22일치에 실었다. 이런 독특한 번식행동의 뒤에는 ‘자가 투약’이 있었던 것이다.
자가 투약이란 사람이 약초의 유용성분을 이용하듯 참새에서 침팬지까지 동물들이 치료 등을 목적으로 자연 속에서 약용 성분을 섭취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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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뢰과 딱정벌레의 모습. A와 D는 독이 있다는 붉은색 경고 무늬. B와 C는 적에게 공격받았을 때 방어를 위해 독성물질을 분비하는 모습. E는 독성물질 분비를 흉내낸 무늬. 사진=가르시아 파리스
느시는 다른 동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독충인 가뢰과의 딱정벌레를 잡아먹는다. 이 벌레의 몸에는 칸타리딘이란 맹독 물질이 포함돼 있다.
이 독성물질은 맛이 쓸뿐더러 많이 먹으면 자칫 목숨을 잃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일부 독개구리는 독을 얻기 위해 이 벌레를 먹는다. 또 사람들은 최음제로 이 벌레를 이용해 왔다. 칸타리딘은 남성에게 발기 지속증을, 여성에게 자궁수축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느시도 가뢰를 맛이나 영양분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다. 가뢰는 대개 여러 마리가 몰려있는데 느시는 대개 한 마리만을 잡아먹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성을 고려해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가뢰는 느시의 번식기에 출현하는데, 특히 수컷 느시가 큰 딱정벌레를 자주 먹었다. 연구진은 가뢰 섭취가 느시 짝짓기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연구실과 현장에서 조사에 나섰다.
연구진은 느시가 섭취한 가뢰의 독성 성분이 콩팥과 간에 축적돼 기생충을 죽이고 감염성 장내세균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수컷이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번식기 때 수컷은 다른 수컷과의 싸움으로 스트레스가 심해 면역체계가 약해진다. 가뢰의 독은 이때 부족한 면역능력을 보충해 주는 구실을 한다.
암컷에서 총배설강을 보여주는 수컷의 과시 행동(A, B 사진=C. 팔라친). 과시 행동중인 수컷 총배설강 주변의 흰 깃털(C, 사진=F. 코바크스). 건강하지 않은 수컷 총배설강에서 삐져나온 기생충(D, 사진=C. 팔라친, E, 사진=A. 루카스).
충분한 가뢰를 먹은 수컷 느시의 총배설강은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세균에 감염된 느시는 설사 등에 의해 항문이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암컷은 더럽혀지지 않은 흰 깃털에 둘러싸인 수컷의 총배설강을 겉모습과 함께 부리로 쪼아 내부 상태까지 점검한다. 항문 겸 생식기가 깨끗한 수컷은 독물인 칸타리딘에 대한 내성이 큰 건강한 개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가뢰를 섭취해 얻는 칸타리딘이 느시에게 항균제와 병균 억제제 구실을 하며 이 독충을 먹은 수컷의 짝짓기 확률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avo C, Bautista LM, Garcı´a-Parı´s M, Blanco G, Alonso JC (2014) Males of a Strongly Polygynous Species Consume More Poisonous Food than Females. PLoS ONE 9(10): e111057. doi:10.1371/journal.pone.011105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