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탕’. 깊어진 가을의 차가운 공기 사이로 골짜기를 울리는 소리가 퍼집니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잦아지고, 개들의 짖는 소리도 연신 울려 퍼집니다. 겨울이 찾아오면 많은 시·군에서 수렵이 허용됩니다. 보통은 겨울 3~4개월을 공식적인 수렵 허가 기간으로 공시하고 제한적으로 야생동물을 포획하게 하는 것이죠. 이 밖에도 고라니와 멧돼지 등에 대해서는 유해조수 구제 등의 이유로 거의 1년 열두달 수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나면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밀렵이나 수렵에 희생된 동물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 낙엽이 지고 산에 들어가기 쉬워지니 덫이나 올무에 걸린 고라니, 너구리 신고도 늘어납니다. 오리·기러기를 잡기 위해 뿌려둔 농약 묻은 볍씨 등은 수많은 생명을 고통 속에 죽게 만듭니다.
농약을 먹고 죽은 오리를 맹금류와 같은 다른 동물들이 먹고서 연쇄죽음을 낳기도 합니다. 수렵 기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밀렵도 기승을 부리고, 관계기관에서는 특별단속 기간까지 편성하여 전투와도 같은 단속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밀렵의 대상은 그 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몸에 좋다고 하여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냇가 바위를 뒤집고 동면하는 산개구리를 잡습니다. 늦가을 동면을 위해 산으로 올라가는 뱀을 잡고자 3㎞가 넘는 뱀 그물을 깔아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먹기 위해 잡는 동물들도 있지만 덩치가 크고 화려하다고 하여, 그냥 눈에 띈다고 하여 총질해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100g도 안 되는 작은 도요새류도 있고, 크게는 멸종위기에 처한 큰고니, 독수리나 흰꼬리수리까지 다양하기도 합니다.
냉철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수렵은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생계활동이었을 겁니다. 수렵으로 잡은 동물은 거의 유일한 단백질 보충원이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굳이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거나, 하나의 레저 활동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또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수렵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건 남한의 특수한 환경 때문입니다. 이미 남한은 호랑이, 늑대, 표범 등 대형 맹수류가 사라져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하는 동물들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북으로는 휴전선, 동서남으로는 바다로 둘러싸여 섬이나 다름없는 환경이죠. 이 고립된 곳에 끊임없이 서식지를 단절시키는 도로가 건설되고, 도시는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너구리나 고라니, 설치류, 까치나 직박구리와 같이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들의 수는 오히려 늘어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동물들은 인간들과 자꾸 충돌하고, 결국 통제라는 이름 아래 합법적으로 수렵을 허용합니다. 1년에 수렵되는 고라니는 10만마리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수가 늘어난 고라니는 여전히 농가의 골칫거리죠. 간혹 구조센터 직원들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대주제를 바로 현실에서 보게 됩니다. 지난여름, 한 농촌에선 새끼 고라니를 주민들이 발견한 뒤 속을 썩이니 그냥 없애버리려 했답니다. 마침 그 마을에 귀농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분이 있어, 그 고라니 새끼들을 구출(?)하여 구조센터에 재구조요청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야생동물들이야 보통은 언제든 떳떳하게 야생으로 돌려보내지만 고라니나 뱀은 워낙 천덕꾸러기인지라 방생하는 장소의 주민들 모르게 조용히 풀어야 합니다. 만에 하나 주민들 눈에 띄는 날에는 때때로 욕을 먹거나, 옥신각신해야 하는 일들도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외부 차량이 들어오면 자세히 살펴보고, 방문한 용건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 대답도 잘해야 하죠. 그러니 방생 장소를 고를 때도 되도록 외진 곳을 찾고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골라, 밤 시간을 이용하여 풀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생동물 구조센터는 다친 고라니 한마리 한마리가 다 소중하고, 모두 살리고 싶지만 농가의 아우성을 듣게 되면 난감해집니다. 그러니 동물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남들 보지 않는 한밤중에 고라니를 방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야생동물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는 마치 이리저리 얽혀버린 실타래 같습니다. 야생동물의 균형적 관리를 생각하면 생명이 가벼워지고, 생명을 바라보자니 농가와의 충돌이라는 미로에 빠집니다. 끝이 보이는 미로라면 따라가 볼 만할 터인데, 안개가 자욱해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럴 땐 그저 눈 꼭 감고, 하던 일이나 잘하자며 눈앞의 동물들을 치료할 뿐입니다.
김영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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