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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다리따라 흐르는 600년 서울역사

등록 2005-09-27 20:10수정 2005-09-27 20:17

독일 베를린시가 청계2가 삼일교 남단 한화빌딩 앞에 조성해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광장이 27일 개방됐다. 30여평의 광장에는 1989년 독일 통일 당시 허물어진 베를린장벽 가운데 폭 1.2m, 높이 3.의 베를린장벽 세 덩어리가 원형 그대로 옮겨졌고 베를린시의 상징동물인 곰 형상도 함께 설치됐다. 서울시 제공
독일 베를린시가 청계2가 삼일교 남단 한화빌딩 앞에 조성해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광장이 27일 개방됐다. 30여평의 광장에는 1989년 독일 통일 당시 허물어진 베를린장벽 가운데 폭 1.2m, 높이 3.의 베를린장벽 세 덩어리가 원형 그대로 옮겨졌고 베를린시의 상징동물인 곰 형상도 함께 설치됐다. 서울시 제공
열린 청계천 숨쉬는 도시 D-3

광통·수표교 등 다리마다 사연 가득…“역사 속살 드러내는 복워돼야”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인공구조물 속에 잠들었던 우리의 역사도 숨을 토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지나다니던 조선 제1의 다리 광통교와 수표석이 세워진 수표교는 6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모전교와 장통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 옛 다리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쏟아낸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운종가~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중심통로였던 광통교는 주변에 시전이 있어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다리였다. 너비(약 1)가 길이(약 12m)보다 더 큰 광통교는 태종10년(1410년)에 애초 있던 토교가 큰 비로 유실되자 정적이었던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에서 돌을 가져다 만들었다. 광통교는 일제가 폭을 넓히기 위해 양편을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하면서 훼손됐다.

청계천 시점부인 청계광장에서 종점부인 신답철교 부근까지 5.8km 물길에 세워진 각양각색의 다리. 왼쪽 위부터  바우당교, 새벽다리, 맑은내다리, 버들다리, 삼일교. 오른쪽 위부터 무학교, 두물다리, 나래교, 영도교, 다산교. 연합뉴스
청계천 시점부인 청계광장에서 종점부인 신답철교 부근까지 5.8km 물길에 세워진 각양각색의 다리. 왼쪽 위부터 바우당교, 새벽다리, 맑은내다리, 버들다리, 삼일교. 오른쪽 위부터 무학교, 두물다리, 나래교, 영도교, 다산교. 연합뉴스
수표교는 1441년(세종 23년) 다리 옆에 물의 높이를 표시하는 수표석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불렸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리밟기 놀이를 즐겼다.

청계천 상류에서부터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는 과일을 파는 과전이 길모퉁이에 있어 모전교라고 하였으며 장통교는 광통교와 수표교 사이에 위치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리의 길이가 길어 장통교 또는 장추교 등으로 불렸다. 장통교가 위치한 곳은 청계천 본류와 목멱산(현재 남산) 쪽에서 흘러내리는 지천이 합쳐지는 곳이다. 따라서 청계천 본류의 폭이 이 지점에 이르면 20m 이상으로 넓어진다.

오간수문(오간수교)은 원래 다리가 아니라 성벽 아래에 설치된 수문이었다. 성벽 아래 다섯 간의 수문이 있고 수문 앞에 긴 돌로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다. 오간수문 역시 1907년 일제가 하천수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수문을 뜯었고 이듬해에는 도심 교통을 명분으로 성벽을 헐어내고 다리를 설치해 이때부터 오간수문을 오간수교라고 부르게 됐다.

그러나 청계천의 역사 복원은 방식에 이견이 많아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이다. 청계천 다리 중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이 보전된 것은 수표교이다. 현재 장충단공원에 있는데 2010년 제자리에 복원될 예정이다.


일부 복원된 광통교는 본래 위치에서 상류쪽으로 15 위쪽에 설치됐다. 조선 제1의 다리인 광통교의 상징적 의미를 살려 남대문로와 연결해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많은 교통량으로 훼손의 우려가 있고, 광교에 인접해 복원할 경우 초라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원래 위치에서 150미터 옮겨 복원된 청계천 광통교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아래는 청계천이 덮히기 전의 광통교 옛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원래 위치에서 150미터 옮겨 복원된 청계천 광통교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아래는 청계천이 덮히기 전의 광통교 옛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다섯 간의 수문이 있는 오간수교는 수문이 사라진 채 밋밋하게 복원됐으며, 청계천 문화재 조사에서 발굴된 호안석축(강 양쪽 언덕에 돌로 쌓은 축대)은 제자리를 잃은 채 현대식 석벽 속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다리의 복원은 단지 모양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묻어나는 역사, 주변 도로와 연결된 그 시대의 생활상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문화재 복원은 정확한 고증이 먼저”라며 “사진 한장 발견됐다고 곧바로 복원작업에 착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찬영 기자 Lcy100@hani.co.kr

여전히 ‘고통’ 받는 청계천다리

이 시장 복원 약속불구 ‘왔다리 갔다리’

2002년 2월 25일 청계천1가 광통교 네거리 복개 구조물 아래 내려간 이명박 후보는 광통교 기둥을 붙잡고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고통받는 광통교를 복원하고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제자리에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원 과정에서 청계천의 역사 유적은 애초 서울시로부터 상당한 ‘홀대’를 받았다. 광통교가 교통 문제 등을 이유로 상류로 150m 가량 옮겨진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시민단체와 <한겨레>의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이 서울시의 태도를 다소나마 바꾸는 데 기여를 했다. 탑골공원에 방치됐던 광통교의 삿갓형 난간기둥 2개와 난간동자(난간가로대받침) 2개 등을 발견(<한겨레> 지난 2월2일 보도)해 복원에 사용되도록 했다.

또 청계천 복원이 본격화하던 2004년 초부터 서울시가 발굴된 역사 문화재를 훼손한 점 등에 대한 집중적인 고발이 이뤄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4월9일 광통교·수표교·오간수문터 등을 사적으로 가지정하고 주변 공사를 중단시키기에 이르렀고, 결국 서울시도 그간 난색을 표하던 수표교의 원위치 복원 방침(2010년 예정)을 정했다.

또 <한겨레>는 청계천 본류의 9개 옛 다리 가운데 모습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전교, 하랑교, 효경교, 마전교 등 4개 다리의 사진을 문헌연구가 이순우씨의 도움으로 발굴해 2004년 11월 보도했다. 서울시는 “이 사진의 하랑교, 효경교 등의 복원을 수표교 복원과 연계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청계천 복원에는 이전된 광통교 외에 다른 8개 다리들의 복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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