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청계천 아티스트 공개 오디션에 참가한 ‘생이 아름다운 극단’팀이 마임을 에서 자신들의 창작내용을 펼쳐보이고 있다이 열려 한 참가팀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열린 청계천 숨쉬는 도시 D-2
새달 1일 청계천에서는 맑은 물뿐 아니라 문화의 향기도 곳곳에서 피어난다. ‘청계천 아티스트’로 명명된 청계천변 거리예술가들은 외국의 ‘버스커’처럼, 열린 무대에서 관객과 같은 눈높이로 호흡하며 연극과 음악, 무용, 퍼포먼스, 춤, 미술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디션 거친 ‘한국형’ 거리예술가 총집함
열린무대서 11월중순까지 시민과 호흡 지난 23~24일 열린 청계천 아티스트 오디션은 거리예술가들이 만드는 열린 문화공간으로서의 청계천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요란한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청중의 혈관 속 맥박을 팔딱거리게 만든 주인공은 ‘공새미 가족사물놀이’였다. 김영기씨 부부와 초·중·고교생 자녀 3명으로 이뤄진 공새미는 아마추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화려한 연주경력을 자랑한다. 공새미는 지하철예술무대 등에서 잔뼈가 굵었고 지난해에는 열달 동안 전세계 100여개 도시를 돌며 거리공연을 통해 한국의 사물놀이를 만방에 알렸다. 김영기씨는 “거리공연은 정식 공연장보다 시민들 가까이에서 같이 호흡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전통연희악회 ‘너름산이’는 흥겨운 춤판으로 먼 옛날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재현한다. 결성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너름산이의 동호인 20여명이 펼치는 탈춤·풍물·무용·민요 등은 전통문화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봉산탈춤의 미얄춤과 사자춤은 관객들에게 해학과 웃음을 선사하고 태평무, 승무 등의 한국무용과 선소리 산타령 등 민요는 우리 문화의 참멋을 전해준다. 전통문화가 지루해질 즈음엔 청계천을 타고 흐르는 클래식 선율이 손목을 잡아끈다. 전자바이올린 연주가 유진박이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결성한 ‘노블카운티 솔로이스츠’는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에다 아프리카 타악기까지 결합해 격정적인 클래식과 퓨전음악을 들려준다. 미국 줄리어드음대 재학 당시 그 자신이 ‘버스커’였던 유진박은 “거리만큼 훌륭한 무대가 없다”며 “밖에서 연주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0여명이 똑같은 동작으로 빚어내는 탭댄스 동호회 ‘탭조아’의 군무와 웅장한 소리에 몸을 맡겨도 좋다. 스윙음악을 배경으로 나무바닥에서 일제히 울려퍼지는 탭댄스 소리를 듣노라면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20대 안팎의 젊은 춤꾼들이 모인 ‘갬블러 주니어’가 펼치는 브레이크댄스도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지난해 세계 브레이크댄스 경연대회 우승을 차지한 프로 댄스팀 갬블러의 뒤를 잇는 팀이지만, 실력만큼은 그에 못지 않다. 청계천변을 거닐다가 물동이를 인 아낙네 모습의 황토색 석고상이 다가와도 놀랄 것 없다. 젊은 여성 마임가 극단 ‘유정’은 도심 속 청계천처럼 물 한 바가지를 건네며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잠시 쉬었다 갈 것을 권한다. 오디션 당시 신기해하는 청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석고 마임은 청계천의 명물로 자리잡을 듯 하다. 이밖에 한국예술문화원의 할아버지 서예가들은 시간을 조선시대로 되돌린 듯 푸른빛 도포자락을 두르고 한지에 한자를 써내려가며 서예의 멋을 알리고, 혁필화가 강태옥씨는 오색물감의 가죽 붓으로 한자이름을 응용해 그림을 그리는 전래 민화 혁필화를 소개할 작정이다. 거리예술가 공연은 무료이지만 관객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감상비를 지불해도 좋다. 청계천 아티스트는 올해는 11월 중순까지 활동하고 해마다 3월 정기 오디션을 거쳐 새로운 거리예술가들이 선발된다. 주관을 맡은 서울문화재단은 청계천을 도심 속의 문화 오아시스, 문화가 흐르는 청계천으로 가꾼다는 계획이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난장 한번 요란하다∼” 조선시대 청계천은 살아뛰는 문화중심지
청계천 새물맞이 축제 기간 중 청계천 아티스트 공연 일정
조선시대 청계천변에는 사람들에게 소설책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유명했다. 전기수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이란 뜻으로, 문맹률이 높고 책이 귀했던 시대에 서민층에까지 문화를 전파하는 구연예술가 구실을 톡톡히 했다. 김선풍 중앙대 교수(민속학과)는 “전기수가 수표교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그치고 광교로 넘어가면 군중이 우르르 몰려가는 등 인기를 끌었다”며 “전기수가 다시 등장하면 청계천의 고전적인 문화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말기에는 정월대보름 등 큰 축제에 맞춰 선소리 산타령패들이 등장해 소리판을 벌였다. 정월대보름에 놀이패들은 청계천 다리 밑에서 무동을 태우고 춤을 추며 놀다가 사람들이 모여들면 장구, 소고 등의 반주에 맞춰 소리를 주고 받으며 신명난 소리판을 엮었다. 청계천은 또 우리 전통무예인 태껸이 행해지는 장소였다. 조선시대 서울에선 마을끼리 편을 갈라 승부를 가리는 결련태껸이 성행했는데, 동대문·광희문·왕십리 일대 등 청계천 하류쪽이 주요 무대였다. 이 지역은 훈련원이 위치해 군인들의 주 거주지였던 까닭에 태껸이 널리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청계천은 다리밟기·연날리기·연등놀이 등 각종 민속놀이가 펼쳐지는 축제의 장이었다. 정월대보름이면 남녀노소,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몰려나와 보신각에서 종소리를 듣고 광통교, 수표교 등에서 다리밟기를 하면서 한해 동안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빌었다. 조선시대 <경도잡지>는 “이날 밤에는 사람이 바다를 이루고 사람의 성을 쌓는다. 어떤 이는 피리를 불고 어떤 이는 북을 치며 난장판이 벌어진다”고 청계천의 당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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