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상권
열린 청계천 숨쉬는 도시 D-1
땅값 ‘들썩’…남은 청계천 상인 “어쩌나”
산업화 한축 ‘청계벨트’ 첨단화 모색을 “우리 개천 사람들, 요즘 고민 없는 사람 없어요. 잠도 잘 못 자요.” 청계천 복원 완공을 나흘 앞둔 27일, 청계3가 천변 바로 앞에서 건설자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춘열(49)씨는 “두렵다”고 말했다. “고가 철거 공사 시작하면서부터 손님이 팍 줄었어요. 교통이 너무 불편해 청계천 들어오면 한나절 걸리고 여차하면 딱지 떼이는데 누가 오겠어요?” 가게를 문정지구로 옮긴다고 신청한 그는 변화가 시작됐음을 감지하고 있다. “얼마 전 가게 근처에 24시간 편의점이 생겼어요. 밤에는 사람들이 다 퇴근하던 개천에선 좀체 볼 수 없던 거지요. 우리 가게처럼 목 좋은 곳은 더더욱 카페나 음식점으로 바뀌기 쉽겠죠.” 청계천 주변 지역이 요동 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02년 7월 청계천 복원사업 발표 이후 천변 주변에서 일어난 건축행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3년여 동안 산업점포의 용도 전환이 가장 많이 이뤄졌다. 이들은 숙박·판매·음식점·주상복합건물로 바뀌어 나갔다. 모두 245건의 건축행위(개보수·신축·증축)가 일어났는데 이 가운데 주거로 전환한 것은 46건(18.7%)으로 가장 많았고 판매(42건·17.1%), 식품위생(36건·14.6%) 순서였다. 연구를 맡은 임희지 연구위원은 “청계천로가 차량 중심에서 보행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물류이동에 민감한 산업점포들이 줄어들고 대신 보행친화적인 식음·판매용도로 변하게 하는 추진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땅값도 뛰어오르고 있다. 뉴서울컨설팅의 김동채 실장은 “2003년 고가 철거 시점을 앞뒤로 땅값이 20~30% 올랐으며 복원사업 완공을 계기로 다시 한번 지가상승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변 바로 앞 땅은 평당 1억원씩 ‘호가’하기도 한다.
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엄청난 구실을 해온 청계천산업벨트가 자연스럽게 변모될 수 있도록 산업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한다”며 “앞으로 천변엔 문화·식음·판매 기능이 들어서고, 산업기능은 블록 내부로 집중해 정보기술 등 첨단산업으로 고도화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정책적 배려 속에서 얼마나 순조롭게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도시사회학자인 닐 스미스는 80년대 후반 뉴욕이 대규모 도심재개발을 거치면서 홈리스가 7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개발은 도시를 양극화한다. 강홍빈 교수(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남아있는 천변 산업 기능을 어디로, 어떤 조건으로 보낼지 연구해야 한다. 첨단산업도 제조업과 결합했을 때 활력이 생긴다. 남은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전략이 돼선 안 된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시다의 꿈을 잊지 마세요” 평화시장 앞 ‘전태일 거리’
전태일의 막내동생인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의 거리’에서 옛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청계 5가와 6가 사이, 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청계천 맑은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평화시장. 전태일은 그곳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먼지에 뒤덮여 창백하게 시들어가는 노동자들을 생각했다. 그 노동의 자리,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에 30일 오후 4시 전태일 동상이 세워진다.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염원을 담은 동판도 마련된다. 사람들은 이곳을 ‘전태일의 거리’로 부르기로 했다. 복원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15일, 전순옥(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씨가 ‘전태일의 거리’에 섰다. 전태일의 막냇동생인 그 역시 이곳 통일상가에서 74~77년 ‘시다’로 일했다. “정말 너무 달라져서 믿어지지 않아요. 예전엔 평화상가 4층 공장은 창문이 모두 막혀 있었어요. 대통령이 청계고가로 지나갈 때 초라한 우리가 보이면 안 된다고 그랬대요. ” 70년대까지만 해도 청계천 평화상가 일대 3·4층은 모두 공장이었다. 가게 주인들은 위층에서 만든 옷을 바로 1층에서 팔았다. 80년대 중반 이후 의류·봉제공장은 청계천에서 가까운 창신동 일대로 옮아갔다. 전순옥씨는 “평화시장 일대를 ‘전태일의 거리’로 부르자고 10년 가까이 외쳐왔다”며 “이제 ‘전태일의 거리’뿐 아니라 여전히 창문 없는 일터인 창신동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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