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병원에 있다 보면 어린이와 동물이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푸들 ‘초코’의 경우도 그랬다. 예방접종을 하러 온 초코의 가족은 강아지를 처음 키우는 가족이었다. 진료하면서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는 백일 된 갓난아기와 같아서 밥도 하루에 네번 이상 줘야 한다’고 설명하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전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애들이 강아지를 너무 갖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준 건데….”
그러면서 “선생님 얘기 들었지? 니들이 키우고 싶다고 했으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해” 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강아지는 아이들이 돌보기로 했으니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처음엔 웃으며 ‘아이들이 강아지를 알아서 키운다고 하지만 결국엔 부모님들이 다 키우시게 되더라고요’ 하면서 호응했지만, 초코 보호자의 생각은 달랐다. 자기는 강아지를 못 만진다고, 돌볼 시간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애들이 직접 강아지를 키우도록 책도 사주고 공부도 하라고 했단다. 자기들이 키워보고 느껴야 배우게 되는 거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종종 ‘내 아이와 함께 키우기 좋은 반려동물은?’ 하고 잡지와 방송에서 인터뷰를 부탁해온다. 생일선물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강아지’인 아이들이 많은데다, 동물을 키우는 것이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면서 관심을 표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감성지수(EQ)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려진 지 오래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대방이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감정을 ‘교감’(empathy)이라고 한다. 이런 교감능력은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함께 지낸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에는 전제가 있다. 동물을 양육하는 책임이 어린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사는 다른 성인 가족이 동물의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물은 교육용 도구가 아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우연한 기회에 각자 키워본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동물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많았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팔던 병아리부터 물고기, 새, 거북이 등등. 병아리나 물고기는 단명했다. 죽은 경험이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은 친구도 있었다.
사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동물의 행동이나 생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동물을 재산이나 소유물, 수단으로 여겼다. 문제는 천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함께 사는 동물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생명이 있는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보다 낮은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가 남아 있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엄마 아빠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따라 한다. 부모가 신문지를 들고 강아지를 혼내면 아이들도 똑같이 혼을 내고,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더 큰 소리로 강아지에게 외친다. 상대방을 대하는 방법은 책이나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애들 때문에 키우는 거라는 생각으로 부모가 동물을 도구적으로 대하면, 아이들은 그런 태도를 따라 배운다. 부모가 동물이 말 안 듣는다고 때리거나 소리치고 혼내는 것이 반복될수록 동물이 느끼는 감정과 고통에 둔감해진다. 안 키우는 것이 낫다.
물론, 아이들이 학교 간 동안 우렁각시처럼 엄마가 다 해놓고 아이들은 그저 안아주고 예뻐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 강아지 밥그릇을 씻게 하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게 하고, 매일 털을 빗겨주라는 등의 사소한 뒤치다꺼리를 하나씩 맡기는 게 필요하다. 아빠도 함께 돌보아야 한다. 주말에 목욕을 담당하거나 퇴근 후 산책을 담당하는 식으로 온 가족이 동물육아를 나누어 맡는 것이다.
아이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한다면 반드시 가족 모두가 동물을 좋아하는지를 고려하자. 처음 키운다면 키우기 전에 동물에 대해 가족이 함께 공부할 것을 권한다. 키우는 것은 어차피 아이들 몫이 아니다. 아이들의 동물과 행복한 동행은 부모의 몫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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