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그들을 볼 수 없다 늑대는 셰퍼드라 불리우는 개와 형태가 비슷해 보이지만 그보다 더욱 뭉툭하고 튼튼하게 생겼다. 꼬리는 항상 아래로 내린 채로 뛰거나 걷는 것이 일반 개와는 큰 차이점이다. 오로지 우두머리 늑대만이 꼬리를 세울 수 있다. 늑대의 턱은 크고 튼튼해서 큰 동물의 뼈도 쉽게 부술 수 있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철저한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늑대의 세계는 인간의 조직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우두머리 늑대는 전체 무리를 통솔하며 사냥을 통해 이들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짝을 이루는 우두머리 부부의 암컷 늑대는 자신의 새끼를 돌보는 역할 뿐만 아니라 수컷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전체 늑대사회를 통솔하는 지위를 갖게 된다. 이들은 사냥한 먹이감을 먹을 때도 전체 구성원이 함께 배를 불릴 수 있도록 해주어 잘 짜여진 명령, 복종의 체계를 효율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흔히 맹수라 하더라도 단독으로 전투를 벌이거나 사냥을 할 때는 혹시 자신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동물들은 한 무리 안에서의 동조행동(conforming behavior)이 나타나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되고, 대장의 후퇴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 무서운 집중력을 갖게 된다. 이런 대중심리는 동물과 인간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 심리현상이다. 이 때문에 늑대는 사람들로부터 주요한 경계의 대상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희생을 치러왔고, 일찍부터 인간에게 오랫동안 쫓기는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늑대에 관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지금도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촌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늑대나 범 종류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되면 순사, 포수, 사냥꾼들이 모두 집결하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산을 포위해 총으로 잡아내었다고 한다. 인간과의 충돌이 컸던 동물일수록 그들을 회상하는 기억도 강렬하다. 과거 그들을 향한 강한 증오는 이제 그들에 대한 아련한 애증으로 다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늑대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동물은 이제 거의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설령 산 속 어딘가에 몇 마리가 겨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비슷한 형태의 들개와도 교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순수한 늑대의 혈통을 스스로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1960년대에 경북지역에서 생포된 야생 늑대가 창경원에서 마지막 삶을 살다 간 이후 우리는 그들의 후손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비록 인간과 자연 속에 어울려 살기에는 너무 힘든 종족이었지만, 그들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해줄 것은 과연 아무것도 없었을까. 이 땅을 점령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자연에 대한 책무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센터 소장 hansy@wildlife.re.kr
그들을 볼 수 없다 늑대는 셰퍼드라 불리우는 개와 형태가 비슷해 보이지만 그보다 더욱 뭉툭하고 튼튼하게 생겼다. 꼬리는 항상 아래로 내린 채로 뛰거나 걷는 것이 일반 개와는 큰 차이점이다. 오로지 우두머리 늑대만이 꼬리를 세울 수 있다. 늑대의 턱은 크고 튼튼해서 큰 동물의 뼈도 쉽게 부술 수 있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철저한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늑대의 세계는 인간의 조직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우두머리 늑대는 전체 무리를 통솔하며 사냥을 통해 이들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짝을 이루는 우두머리 부부의 암컷 늑대는 자신의 새끼를 돌보는 역할 뿐만 아니라 수컷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전체 늑대사회를 통솔하는 지위를 갖게 된다. 이들은 사냥한 먹이감을 먹을 때도 전체 구성원이 함께 배를 불릴 수 있도록 해주어 잘 짜여진 명령, 복종의 체계를 효율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흔히 맹수라 하더라도 단독으로 전투를 벌이거나 사냥을 할 때는 혹시 자신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동물들은 한 무리 안에서의 동조행동(conforming behavior)이 나타나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되고, 대장의 후퇴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 무서운 집중력을 갖게 된다. 이런 대중심리는 동물과 인간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 심리현상이다. 이 때문에 늑대는 사람들로부터 주요한 경계의 대상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희생을 치러왔고, 일찍부터 인간에게 오랫동안 쫓기는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늑대에 관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지금도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촌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늑대나 범 종류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되면 순사, 포수, 사냥꾼들이 모두 집결하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산을 포위해 총으로 잡아내었다고 한다. 인간과의 충돌이 컸던 동물일수록 그들을 회상하는 기억도 강렬하다. 과거 그들을 향한 강한 증오는 이제 그들에 대한 아련한 애증으로 다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늑대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동물은 이제 거의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설령 산 속 어딘가에 몇 마리가 겨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비슷한 형태의 들개와도 교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순수한 늑대의 혈통을 스스로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1960년대에 경북지역에서 생포된 야생 늑대가 창경원에서 마지막 삶을 살다 간 이후 우리는 그들의 후손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비록 인간과 자연 속에 어울려 살기에는 너무 힘든 종족이었지만, 그들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해줄 것은 과연 아무것도 없었을까. 이 땅을 점령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자연에 대한 책무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센터 소장 hansy@wildlife.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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