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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인간은 다른 진화의 배를 탔을 뿐이다

등록 2015-11-13 20:24수정 2015-11-15 11:12

동물을 좋아해 사육사를 꿈꾸며 동물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동물행동학자의 길에 들어선 김예나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동물의 이타성 등 사회인지 연구를 하고 있다. 김예나 제공
동물을 좋아해 사육사를 꿈꾸며 동물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동물행동학자의 길에 들어선 김예나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동물의 이타성 등 사회인지 연구를 하고 있다. 김예나 제공
[토요판] 생명
거울실험 김예나 연구원
▶ 동물을 ‘인격체’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게 들린다.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에서 “이런 이상함은 우리 종족과 다른 종족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우리들의 습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입견을 내다버리고 ‘인격체’에 대한 정의에 비춰 동물에 대해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합리적이고 자의식적인 존재 아닌가? 과거와 미래를 보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결국 동물은 인격체 아닌가 하고 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의 내면을 알 수 있을까? 동물은 우리와 다르게 감각기관으로 세계를 인식하며(돌고래는 음파로 세상을 인식한다),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산다(하루살이와 우리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즉, 그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반응하고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 행동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동물에 대해 상상하는 모든 것은 매번 시시포스처럼 ‘인간중심주의’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를 통해 개발된 세계만 알고 있다. 그 누구도 오랑우탄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약 30억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어느 물렁물렁한 것에서 출현한 이후, 이런 차이는 생명체가 진화의 배를 갈아타고 분기하면서 여기까지 오면서 생긴 것이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인간의 배를 탔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는 침팬지와 고릴라, 오랑우탄의 배들이 있다.

지난달부터 <한겨레>와 국립생태원, 서울대공원이 준비하고 있는 거울실험은 거울을 선택하고 설치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 되고 있다. 동물의 안전을 위해 깨지지 않는 소재가 필요하고 동물이 훼손하지 않도록 부착하는 것도 문제다. 거울실험 첫날로 예정된 지난 11일에도 오랑우탄이 거울을 떼는 바람에 실험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황금원숭이가 첫 연구
사회적 사건 일어나고
행동하고 생리작용 변했다”
동물의 역동성이 자연을 구성

“인지능력 갑자기 생성 안 돼
계통적으로 진화하며 형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오랑우탄
침팬지와 이타성 다를 듯

동물은 왜 이타적인가

이날 오후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에 과학자로 참여한 김예나(30) 국립생태원 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영장류 행동학자로, 미국 애틀랜타의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와 함께 영장류 행동 연구의 중심지로 꼽히는 일본 교토대 영장류 연구센터와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을 오가며 연구하고 있다.

-영장류를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요?

“사육사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 때 서울대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삵, 늑대 등 사육을 돕고, 동물 변을 수거해 연구실에 가져다줬지요. 이때 경험이 대학원 공부로 이어졌고 석사과정 때 쓴 논문이 황금원숭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호르몬을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황금원숭이가 계절번식을 하는 종입니다. 이런 종의 암컷들은 비번식기에는 배란이 억제된다고 알려져 있죠. 황금원숭이는 우두머리 수컷에 여러 암컷이 모여 사는 사회인데, 비번식기 때 우두머리 수컷이 교체됐어요. 새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자 (비번식기임에도) 암컷들의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증가하고 교미 횟수가 늘어나게 된 거죠. (계절에 따른) 호르몬 분비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동물 사회에서 사회적 사건이 행동을 야기하고 호르몬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의를 한 거죠.”

동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여겨졌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듯. 그러나 이 발견은 사회적 사건에 따라 생리작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논의한 것처럼 보였다. 동물은 상호 작용하고 사회적 사건을 일으키고 몸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자연을 역동적으로 구성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정의도 허물어졌죠.

“도구의 이용, 언어의 사용, 마음 이론도 그렇고요. 물론 인간과 똑같은 양상으로 관찰되진 않아요. 다만 영장류는 인간과 유사한 편이죠. 이를테면 언어의 특성 중 하나가 범주화(categorization)거든요. 종이컵과 머그컵이 다르게 생겼지만 다 컵이라고 부르듯이, 이런 범주화가 침팬지 같은 동물에서 보인다는 거죠.”

최근 그의 연구 주제는 ‘동물의 이타성’이다. 적자생존이 자연법칙이라면, 상어로부터 사람을 구해준 고래라든지, 동료의 슬픔을 위로하는 코끼리 등의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인간을 포함해) 동물은 왜 이타적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두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혈족 등 유전적으로 가까운 이들을 돕기 위해 이타적 행동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꿀벌이 침을 쏴서 자신은 죽고 여왕벌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둘째는 호혜적 이타성, 즉 ‘기브 앤 테이크’다. 내가 도와주어야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공정한 진리가 진화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오랑우탄과 침팬지의 이타성을 비교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둘은 반대편에 선 유인원이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강력하게 결합된 무리 생활을 한다. 반면 오랑우탄은 밀림의 고층을 돌아다니는 고독한 여행자다. 서로 방문하고 사교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둘 사이의 이타성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침팬지는 무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호혜적 이타성이 있지만, 오랑우탄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기 때문에 이것이 발달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설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험에 많이 사용하는 게 ‘먹이 공유 장치’예요. 이 장치를 통해 먹이를 주면 동물에게 두가지 선택이 주어져요. 나 혼자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남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내가 손해보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나는 먹을 수 있고, 다만 남에게 줄지 말지 선택하는 거죠. 침팬지는 남에게 나눠줄 경향이 있을 거라는 거고, 오랑우탄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가설입니다. 호혜적 이타성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아마 남에게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요. 또한 이타성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이라는 항목이 필요한데, 오랑우탄은 자원의 공정한 분배에도 관심이 없을 거라는 가설입니다.”

인지능력이 갑자기 생성된 게 아니다

그러나 동물의 행동은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말이 안 통하니 의도를 알 수 없다. 또한 실험자, 실험장치 등의 조건이 실험을 방해하거나 실험 결과를 오독시킬 수 있다. 거울실험의 경우 동물의 자아인식 행동을 확인하는 게 목표다. 김예나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영장류는 자아인식 능력이 있지만, 실험에 따라 그런 행동을 안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거울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인지능력이 갑자기 생성된 게 아니라 먼 옛날부터 계통적으로 진화하면서 형성됐다는 거예요. 인간의 인지능력의 원시적 형태를 코끼리나 침팬지에서 볼 수도 있고요.”

1970년 침팬지에 대한 첫 실험 이후 과학자들은 거울실험을 통해 동물의 자의식과 마음을 탐구하고 있다. 오랑우탄과 돌고래와 코끼리, 가장 최근에는 유럽까치가 자아인식 능력의 ‘합격증’을 받았다. 제인 구달이 도구를 사용해 흰개미를 잡는 침팬지를 보고 ‘유레카’를 외쳤듯, 거울실험은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는 입구가 되어왔다. 최근에는 ‘비인간인격체’ 주창론자들이 점점 더 많은 종에서 자의식이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물들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침팬지의 감금을 중단하라는 ‘비인간인격체 소송’이 이들에게서 제기되어 진행 중이다. 김예나 연구원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다.

“침팬지가 거울실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침팬지를 다른 동물을 가르는 잣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들이 인지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은 분명히 있지만.”

윤리학자 피터 싱어도 어떤 동물은 인격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격체냐 아니냐가 ‘흑백의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울실험도 그런 날카로운 구분선은 아니다. 거울실험이 보여주는 자의식은 물론 복잡한 언어체계, 과거와 미래 인식, 윤리 등 한 개체의 세계를 이루는 요소와 능력은 진화 과정을 통해 불균등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물에 대한 불가지성을 깊게 성찰한다면, 중요한 것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 아닐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거울실험 2차 응원 메시지

한겨레 토요판은 독립영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과 함께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진행하고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여러분도 거울실험에 참여해주세요. 후원하신 분들에게 다큐멘터리에 이름을 실어드리고 상영회 초대권, 동영상 파일 등을 제공합니다.

● 후원: 펀딩21 funding21.com
● 실험 진행 과정: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facebook.com/nonhumanperson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자연계에서 거울 속에 비친 게 자신이라는 걸 아는 동물이 몇 안 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씀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거울실험은 자연을 폭넓게 이해하는 훌륭한 지름길입니다.”


노정래 서울동물원장
노정래 서울동물원장
노정래 서울동물원장

“서울동물원이 동물공원의 틀을 벗어나 보전센터의 기능을 하면서 중심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울실험은 오랑우탄을 알아가는 작은 시도로서 오랑우탄 보전의 필요성과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소중한 종이라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장하나 국회의원
장하나 국회의원
장하나 국회의원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한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를 응원합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실시되는 이번 프로젝트가 동물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배다해 뮤지컬 배우
배다해 뮤지컬 배우
배다해 뮤지컬 배우

“동물과 함께 살면서 우리는 늘 그들에게 받기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합니다.”

후원자 (11월13일 오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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