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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1억년 잠 깨고 천의 얼굴로 빛나는 ‘퇴적층 교과서’

등록 2016-05-31 20:04수정 2016-06-01 10:06

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에서 1억년 전 하천에서 주로 모래가 퇴적돼 굳은 사암층을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다양한 퇴적 구조가 나타나 ‘퇴적학 교과서’로 불리는 곳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에서 1억년 전 하천에서 주로 모래가 퇴적돼 굳은 사암층을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다양한 퇴적 구조가 나타나 ‘퇴적학 교과서’로 불리는 곳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⑨ 청송권-길안천 백석탄

경북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서 낙동강 지류인 길안천에 들어서면 이채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강변과 강바닥에 기묘한 모습을 한 새하얀 바위가 수없이 널려 있다. 매끈하게 닳아 빌딩 앞마당의 조형물을 떠올리게 하는 바위가 있는가 하면 남극의 녹은 빙산이 무리지어 흐르는 것 같은 암석도 눈에 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옅은 푸른빛을 띠기도 해 신비로움을 더한다. 청송 8경 가운데 제1경인 신성계곡의 ‘백석탄’이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내’라는 뜻의 이 바위 무리는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20일 조형래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의 안내로 백석탄을 찾았다. 조 교수는 “학생들과 퇴적학 실습을 하러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며 “우리나라 내륙에서 이렇게 입자 알갱이 하나까지 깔끔하게 드러난 깨끗한 퇴적암을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고 말했다.

새하얀 바위가 2㎞에 걸쳐 반짝인다
둥글둥글 뾰족뾰족, 푸른빛마저

공룡시대, 불 뿜던 한반도 남쪽
지각 갈라지고 움푹움푹 꺼져 분지로

호수 만들어지고 퇴적물 쏟아져
두께 100m ‘거대한 뿌리’ 암석으로

소용돌이 물살로 곳곳에 돌개구멍
모래-진흙 켜켜이 쌓여 줄무늬

오랜 세월 모질게 깎여도 의연

하천 건너 산 중턱과 도로 밑까지

퇴적암이란 모래나 진흙, 자갈이 쌓인 뒤 땅속에서 오랜 기간 압력을 받아 생긴 암석을 가리킨다. 이곳엔 공룡시대인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쌓인 모래가 주성분인 사암이 드러나 있다.

조형래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홍수 때 모래층 위에 쌓인 얇은 진흙층이 남긴 줄무늬를 가리키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조형래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홍수 때 모래층 위에 쌓인 얇은 진흙층이 남긴 줄무늬를 가리키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당시 한반도 남쪽은 지금의 일본열도처럼 ‘불의 고리’에 속했다. 가까이에서 옛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섭입) 대규모 화산들이 기다란 띠 모양으로 불을 뿜었다. 특히 일본과 인접한 경상도 일대에는 격렬한 화산활동이 벌어졌다. 섭입활동이 가하는 힘 때문에 지각이 갈라지고 움푹 꺼져 곳곳에 분지가 생겼다. 음성, 공주, 영동, 진안, 능주, 해남 분지는 그때 만들어졌다. 경상도 일대는 가장 큰 분지였다. 크고 작은 호수가 형성됐고, 홍수 때면 거대한 화산과 주변 산악지대에서 퇴적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백석탄은 이렇게 시작됐다.

흰 사암은 상류에서 굴러온 여느 하천의 호박돌과 달리 대부분 기반암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조 교수는 “이곳은 경상분지의 북쪽 경계 근처인데, 인근 산악지역에서 홍수 때면 다량의 모래, 자갈, 진흙이 호숫가 범람원으로 쏟아져 들어와 퇴적층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생물이 구멍 파고 활동한 자국도

이 퇴적층은 안덕면 고와리의 길안천 주변에 1㎞ 길이로, 또 여기서 700m 상류인 지소리에도 비슷한 규모로 지상에 드러나 있다. 역암·사암·이암으로 이뤄진 전체 퇴적층은 길이 10㎞, 두께 100m 이상 규모로 길안천과 비슷한 방향으로 놓여 있다. 지각변동 과정에서 북동쪽으로 30도쯤 기울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퇴적층은 하천 건너 산 중턱과 도로 밑으로 연장해 있다.

지각이 솟아오르면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퇴적층은 오랜 세월 가차 없는 풍화와 침식을 받았다. 특히, 하천은 물살과 모래로 암반을 깎아 ‘퇴적암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퇴적구조를 잘 보여주는 기묘하고 다양한 하천지형을 빚어냈다.

먼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은 절구처럼 원형으로 파인 돌개구멍(포트홀)이다. 급류가 흐르는 암반의 금이 가거나 오목한 곳에는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물살에 쓸려온 자갈이 구멍을 빙빙 돌면서 표면을 깎아내 점점 커진다. 돌개구멍은 확장되다가 이웃 돌개구멍과 합쳐지기도 한다.

암석 표면을 자세히 보면, 짙은 회색의 얇은 띠무늬가 있다. 백악기 홍수 때 급류를 타고 쓸려내려온 모래는 맨 아래 굵은 입자부터 위로 갈수록 차츰 가는 입자가 쌓이고 맨 위에는 진흙이 얇게 쌓인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 흔적이 바로 1㎝ 간격으로 짙은 줄무늬가 있는 사암이다.

인근엔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

바위 표면에는 이 밖에도 당시의 환경을 짐작할 단서가 많이 남아 있다. 하천 바닥에 작은 모래언덕이 만들어진 뒤 물 흐름 방향으로 차츰 전진하면서 띠무늬를 남기거나, 잠잠한 곳에서 물살 때문에 바닥에 자잘한 굴곡이 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도 있다. 홍수가 잠잠해진 뒤 바닥에서는 생물이 구멍을 파고 활동한 자국도 있다.

이곳에서 3㎞ 떨어진 신성리에는 백악기의 대규모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가 있다. 그렇다면 백석탄에서도 당시 하천생물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 교수는 “하천 환경에서는 죽은 생물의 유해가 쉽게 분해되고 떠내려가기 때문에 깊은 호수와 달리 화석이 잘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영과 장석 광물이 많아 흰 빛깔을 띠는 백석탄 사암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이면서도 버텨낸 것만 봐도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다. 조 교수는 “사암은 모래 사이의 틈을 석회질이 채우고 굳으면서 천연 콘크리트를 이뤄 매우 단단하다”고 설명했다.

백석탄을 낳은 퇴적층은 경상분지가 동쪽으로 침강 범위를 넓혀갈 때 쌓였다. 땅이 가라앉기를 멈출 때까지 적어도 수백만년 동안 모래와 진흙, 자갈이 쌓였다. 그 퇴적층은 1억년의 잠을 깨고 백석탄이란 화려한 창문을 열었다.

청송/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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