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위)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초지로 변한 시화호 간척지(아래)에서 과거 해안이던 언덕은 이들의 주요한 번식지이지만 새도시 개발이 예정돼 있다. 신동만 제공(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7일 오전 찾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의 시화호 남쪽 간척지는 황금색 띠로 뒤덮인 광활한 벌판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소금기가 빠진 펄과 바위에 붙은 탈색된 따개비가 갯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1994년 시화방조제로 바다가 막힌 뒤 극심한 수질오염으로 해수유통 결정이 났고, 이후 20년 동안 갯벌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초지 생태계로 변신했다.
‘푸드덕’, 발밑에서 장끼 한 마리가 튀어나와 긴 꼬리를 반짝이며 날아갔다. 꿩과 고라니가 수시로 눈앞에 나타나 놀라게 했다. 자연이 살아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곳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물에선 수달, 땅에는 삵, 그리고 물과 뭍을 모두 합치면 수리부엉이다. 시화호 간척지는 전국에서 수리부엉이의 밀도가 가장 높은 ‘수리부엉이 제국’이다.
초원 가장자리 언덕은 과거 해안이던 곳이다. 파도에 침식된 절벽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기에 알맞다. 암벽에 다가서자 희끗희끗한 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동행한 신동만 박사(조류생태학· <한국방송> 프로듀서)가 “수리부엉이가 얼마 전까지 머문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드러난 정강이뼈에 발가락이 달린 새의 유해와 쥐나 새를 통째로 삼킨 뒤 찌꺼기만 뱉어낸 펠릿이 곳곳에 놓여 있다. 수리부엉이가 잡아온 사냥감을 뜯어먹거나 뼈와 털을 토해 낸 흔적이다.
♣H44s암벽 주변엔 사냥감 잔해 수북
절벽 8부 높이의 움푹 팬 곳이 과거 둥지터라고 신 박사가 가리켰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새가 머리 위로 날아올라 나무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침입자를 지켜보던 수리부엉이였다.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는 머리가 크고 둔한 느낌을 주지만 날아가는 모습은 날개가 아주 길어 늘씬하고 날쌘 모습이었다. 신 박사는 “수리부엉이는 몸길이 70㎝에 날개를 펴면 150㎝에 이르는 대형 조류”라며 “움켜쥐기만 해도 먹이 동물을 곧바로 죽이는 강력한 발톱과 소리를 내지 않는 스텔스 비행술, 예리한 청각과 시각을 겸비한 최고의 포식자”라고 말했다.
안산시에서 ‘시화호 지킴이’로 일하는 최종인씨는 “시화호 간척지의 수리부엉이는 오리와 갈매기는 물론이고 족제비까지 사냥한다”며 “새끼가 깨어나면 다른 곳에서는 쥐 한 마리 잡아놓고 또 나가야 하지만 여기선 오리를 1~2마리 잡아놓고 여유롭게 먹인다”고 말했다.
시화호 간척지의 풍부한 먹이와 서식 여건은 높은 번식 성공률로 나타난다. 이곳에만 약 20쌍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불어난 어린 수리부엉이가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화호 ‘습지 부엉이’의 성공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신 박사와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습지가 중심인 시화호와 농지와 숲이 많은 파주·김포·강화 지역에 둥지를 튼 수리부엉이 44쌍의 먹이와 번식률을 조사한 결과 번식에 성공한 쌍은 평균 2마리의 새끼를 키워내 세계 상위권의 번식 성공률을 보였다. 국제 학술지 <맹금류 연구 저널> 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을 보면, 번식에 성공한 수리부엉이가 길러내는 새끼 수는 스페인에서 2.3마리로 가장 높고 독일 2.1마리, 오스트리아 2마리, 프랑스 1.8~1.9마리, 스웨덴 1.6마리 등으로 스페인을 빼면 시화호의 번식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연구자들은 “스페인 등 유럽에서는 덩치가 크고 개체수가 많은 토끼를 주 먹이로 해 수리부엉이가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였지만 시화호에서는 습지의 새들이 크고 풍부한 먹잇감이 돼 번식 성공률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며 “이 연구는 수리부엉이가 주로 포유류를 먹이로 삼는다는 통념을 깬 사례를 제시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시화호 수리부엉이가 사냥하는 동물 가운데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꿩 등 조류는 먹이 양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번식기에 그 비중은 84%로 뛰었다.
신 박사는 “오리 한 마리면 쥐 5마리 무게인데, 크고 영양가 높은 먹이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시화호가 습지형 서식지로서 가치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과거 멧토끼가 많았을 땐 우리나라에서도 수리부엉이의 주 먹이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의 먹이 조사 기록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화호 습지의 가치는 파주 등 습지 아닌 곳과의 비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화호는 파주 등에 견줘 번식 성공률이 1.7배나 높았다. 파주 등에선 보통 알에서 깬 2~3마리의 새끼 가운데 발육이 느린 개체들이 3마리에 1마리꼴로 도태되는데, 시화호에선 대부분 자라서 둥지를 떠난다. 습지가 아닌 곳에서도 멧비둘기, 꿩 등 조류는 양적으로 주요한 먹이였지만 사냥 빈도는 쥐가 가장 높았다.
그 지역 생태계 건강하다는 증거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가 잘 산다는 건 그 지역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유정칠 교수는 “맹금류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어 오염물질이 축적돼 알의 부화가 안 되기도 하고 둥지를 틀 절벽과 먹이터가 주변에 있어야 하는 등 서식조건이 까다로워 세계적으로 대부분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화호의 ‘수리부엉이 제국’은 붕괴가 예정돼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6년 수립된 시화지구 장기종합계획에 따라 시화호 남쪽 간척지에 2030년까지 송산 그린시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수리부엉이 서식지에는 대규모 주거 지역이 들어선다.
생태도시를 만든다며 국내 최대 규모의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없애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최종인씨는 “이미 개발로 수리부엉이의 서식지가 망가지고 있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만 했지 실질적인 보호 조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주거지역과 서식지 사이에 수로를 조성해 차단 공간과 먹이터 구실을 하도록 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둥지에 엎드린 어린 수리부엉이 뒤로 어미가 잡아놓은 오리와 꿩이 보인다. 시화호 습지는 새가 먹잇감으로 풍부해 새끼 번식 성공률이 매우 높다. 신동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