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이나 폭풍 사고로 이산가족
큰고니 무리에 끼어 구박 견뎌
백조라 부르는 겨울철새의 귀족
2월엔 번식깃이 나와 누런 혼인색
백조라고 흔히 부르는 고니는 크고 화사한 겨울 철새의 귀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고니는 한 종이 아니고 고니, 큰고니, 혹고니 등 3종이다. 이마에 검은 혹이 난 혹고니는 멸종위기종 1급이고 나머지는 2급인데, 우리나라에서 고니를 보기는 쉽지 않다. 큰고니는 경안천, 팔당, 천수만, 을숙도, 주남저수지 등 여러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겨울 철새 가운데 고니를 보았다면 큰고니일 확률이 높다.
지난 11월21일 충남 서산시 해미천에서 큰고니 80여마리의 무리 속에서 홀로 끼어 있는 고니를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두 종을 구별하기 힘들다. 고니는 몸집이 큰고니보다 작고 부리 안쪽 노란 부위가 부리 끝 검은 부위보다 좁은 것이 특징이다.
외톨이 고니는 큰고니 무리 속에서 잘 어울리며 지내고 있었지만 따돌림과 텃세를 피하지는 못했다. 천덕꾸러기처럼 구박과 따돌림을 받더라도 큰고니 속에 끼어서 월동을 할 처지이다.
이 고니는 어떻게 다른 종 무리에 끼게 된 것일까. 번식지에서 가족이 밀렵 등 사고를 당해 뿔뿔이 흩어졌을지 모른다. 아니면 월동지로 이동하다가 폭풍을 만나 가족을 떠나 큰고니 무리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두루미 무리에서도 이런 ‘입양’은 종종 보이는 일이다.
비록 큰고니 무리에서 이리저리 차이면서도 고니는 적당히 눈치를 살피며 주눅 들지 않고 큰고니 무리와 행동을 같이한다. 큰고니가 먹이를 먹으러 수초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따라가고, 휴식과 낮잠도 함께 즐기는 등 큰고니처럼 행동한다.
큰고니 무리에서 고니는 ‘미운 오리 새끼’이지만, 다행이라면 다 자란 개체여서 번식지로 돌아가면 어렵지 않게 자기 무리에 합류할 것이다. 어쨌거나 외톨이 고니로서는 올겨울 이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겨울나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생명의 위협마저 겪을 것이다. 그래서 고니는 ‘큰고니 따라 하기’에 필사적이다. 그나마 큰고니가 받아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니와 큰고니의 깃털이 하얀 솜사탕처럼 곱게 보인다. 그러나 2월이 되면 번식깃이 나와 누런 혼인색을 띠게 된다. 고니의 고운 깃털을 보려면 너무 늦지 말아야 한다.
글·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큰고니로부터 구박을 당하는 외톨이 고니(가운데). 하지만 겨울을 나려면 어쩔 수 없이 무리 속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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