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 대신 에너지 투자하도록“ 위르겐 마이어 독일 환경개발포럼 사무총장
[뉴스인물] “주식·부동산 대신 에너지 투자하도록”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환경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기후 변화이다. 최근 미국과 중남미를 강타한 허리케인,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을 굶주리게 하는 가뭄, 최근 유럽 곳곳에서 나타난 홍수 등이 모두 기후변화의 폐해다.” 기후 변화 막으려면 재생가능에너지 늘려야
세계화는 부익부 빈익빈·환경문제등 부채질 위르겐 마이어 독일 환경개발포럼 사무총장이 독일의 환경운동과 유럽 진보세력의 미래 등을 강연하기 위해 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방한했다. 조홍섭 <한겨레> 부국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소문동 배재빌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그를 만나 에너지 정책, 반세계화 운동, 유럽 진보운동의 과제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독일 녹색당 국제담당 최고위원(1987~92년)을 지낸 마이어는 현재 독일 환경운동단체의 연합조직인 환경개발포럼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녹색당 최고위원 시절 세계 각국의 민주화를 지원했던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7년부터 외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돕던 교민들을 적극 지원했고, 1988년에는 한국에서 개최한 평화대회에 참석했다 강제추방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허담 외교부장과 면담하고, 당시 전대협 대표로 방북했던 임수경씨를 만나기도 했다. 마이어는 6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 재생가능에너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조=그동안 발표한 글을 보면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는 기후 변화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마=현재 전지구적 환경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급격한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파괴 등이 있다. 대기오염이나 물오염 등이 지역적 문제를 낳는 것과 달리 이런 문제들은 전지구적 차원의 피해를 가져온다.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는 가장 심각하다. 생태계가 적응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운 뒤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주범인데,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부른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재해다. 최근 미국과 중남미를 강타한 허리케인,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을 굶주리게 하는 가뭄, 최근 유럽 곳곳에서 나타난 홍수 등이 모두 기후변화의 폐해다.
그래서 기후변화를 미리 막는 게 중요하다. 재생가능에너지를 더 많이 생산하고, 대중교통 중심으로 교통정책을 세우는 것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조=독일은 여러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독일의 성공을 부러워 한다. 한국의 많은 학자나 정치인들은 그런 성공이 한국에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경험을 들려달라. 마=독일은 풍력발전, 태양열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량이 세계 1위다. 하지만 독일의 지리적 여건이 우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해안선이 길지도 않고, 햇빛도 충분치 않다. 우리보다 더 좋은 자연적 조건 가진 나라들을 제치고 우리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에너지에 투자하도록 유도한 정책 덕분이다. 정부가 직접 모든 것을 지휘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 정부는 민간이 만든 에너지를 좋은 가격으로 사주면 된다. 그러면 의사, 변호사 등 돈 많은 사람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처럼 에너지에 투자하게 된다. 에너지 투자는 예상가능한 수익을 내기 때문에 위험성도 거의 없다. 조=독일은 높은 실업률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나? 마=에너지 생산 설비를 보라. 태양열발전을 하려면 태양열 전지판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붕에 설치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발전설비를 만들 강철도 필요하니, 강철 회사가 있어야 한다. 과거 석탄산업 종사자는 3만여명이었지만,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은 1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7천만톤이나 줄였다. 조=독일은 지난 9월 선거로 정권이 바뀌었다. 사민당-녹색당 연정에서 세운 그런 에너지 정책이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에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마=그렇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예정자도 원자력발전을 계속 줄여가야 할 것이다. 독일 유권자들이 원자력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콜 정부도 원자력을 늘리는 정책을 세웠지만 이내 삭제했다. 독일에서 원자력은 축소되 가는 게 대세다. 조=환경개발포럼은 반세계화 활동도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환경과 세계화는 어떤 관계가 있나? 마=세계화는 환경 이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독일은 세계화의 수혜자다. 우리는 세계 1위의 수출국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시장과 무역장벽 없는 통상체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독일은 세계화로 고통받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각 나라가 보호정책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농업을 보라. 외국의 값싼 농산물에 밀려 농민들이 몰락해 가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세계화는 ‘환경적 덤핑’ 체제다.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상품을 싸게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환경 관련 까다로운 제재가 있는 나라는 불리하다. 환경 제재가 없는 곳에서 환경을 오염시켜 가며 값싼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또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은 에너지 집약적인 상품을 만들 때 (이 협약에 가입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제한을 받는) 일본이나 유럽보다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같은 세계화 조건에서 환경 보호의 선두주자들은 비용을 더 많은 비용과 규제를 받게 된다. 조=한국 경제도 외국과 교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세계화를 좋은 것으로 여긴다. 좋은 상품을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같은 신흥공업국에게 세계화의 폐해는 무엇이 있는가? 마=2003년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인 농민이 세계화에 반대하며 자살하지 않았나. 아프리카는 더욱 착취받고 있다. 세계는 빈국 지원을 위해 새천년개발계획 등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세계무역기구 등을 통해 부자나라들이 더 부자가 되려고 한다. 이기적인 일이다. 조=한국은 최근 식품 안전 관련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마=유럽의 많은 식품업체들이 국제화 돼 있다. 예컨대 네덜란드에서 기른 소를 이탈리아에서 도축해 독일에서 가공 수출하는 식이다. 각 나라들은 식품 관련 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업체들은 식품 생산을 하기에 가장 좋은(제재를 덜 받는) 장소를 선택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질 나쁜 식품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각 나라들이 각각의 공정은 통제하지만, 전체 과정을 통제하는 기구가 없는 것도 문제다. 조=지속가능 개발의 필수요건인 새 에너지 기술은 주로 서양에서 개발되고 있다. 새 에너지를 세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은 자칫 개도국을 또 한번 종속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마=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기술은 에너지가 부족한 중국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다. 중국이 처음에는 독일의 관련 제품을 수입하더라도, 이내 그 제품을 모방하거나 응용해 또 다른 설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조=최근 독일 선거에서 보수정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이 1위를 하는 등 진보운동 세력이 약화되는 것 같다. 녹색당도 지지율이 줄었다. 녹색당은 제도 정치권에 들어간 뒤 색깔이 많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받았다. 마=사민당의 의석수는 줄었지만, 좌파연합이 약진했다. 녹색당도 지난 선거 때 지지율(8.6%)을 비슷하게 유지했다. 녹색당이 제도화됐다는 비판은 인정한다. 조=그래서 정당 대신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마=정당은 나이 든 사람이 주로 간다. 젊은이들은 정당에 관심 없다. 그들은 시민운동으로 간다. 정당에서는 더이상 창의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새 아이디어는 시민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조=한국에서도 시민단체가 급격히 늘어났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민단체가 권력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정부에서 보조금도 받고 있다. 환경개발포럼은 어떤가? 마=우리는 로비스트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일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회원들의 자발적 회비 납부로만 운영된다. 상근자는 5명이지만, 전국적으로 200만명의 회원이 있다. 그들은 매달 5~50유로의 회비를 낸다. 조=독일을 비롯한 유럽 진보세력의 숙제는 무엇인가? 마=최근 독일은 실업자가 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70년 전 실업자가 600만명이었는데 이 때문에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다. 독일 정부는 대기업들에게 세금을 감면하면 기업이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앴다. 노동(고용)에 부과하는 세금을 줄이고 에너지세를 부과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이 고용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독일 진보세력의 딜레마는 환경운동과 녹색당, 노동운동과 좌파연합이 같은 노선을 취하지 않는 데 있다. 예컨대 환경쪽에서 핵발전소 폐기를 주장하면 노동쪽에서는 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반대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좌파정당과 환경운동세력 모두 독일이 신자유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노선으로 회귀하는 것은 반대하기로 합의했다. 진보 운동은 세계가 부정적인 쪽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 적극적 태도로 위기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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