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말 다행히 카메라에 찰칵 포유류 반달가슴곰
2000년말 다행이 카메라에 촤르르
곰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과 깊숙한 동질성을 가진 동물이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해수 구제, 한국전쟁 시기의 서식지 훼손, 현대의 자연환경 파괴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반달곰들은 불과 수십년 사이에 거의 사라지게 됐고,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그들만의 생존 역사는 허무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리산의 경우 불과 5마리 남짓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암울한 소식들만 퍼지고 있던 2000년말 다행히 야생 곰의 모습이 촬영되었고, 비로소 우리나라에서도 반달곰 복원이라는 중대한 의미의 자연회복사업이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 사업은 비록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귀중한 연구 경험과 과학적 지식들을 축적해내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앞으로의 다른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에도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반달곰 복원에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애초 지리산의 반달곰 복원사업은 야생 개체군의 숫자가 너무나 줄어든 상태에 이르러서야 복원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결국 가까운 나라에서 새로운 반달곰 개체들을 도입해서 방사해 주어야만 하는 부득이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자칫 복원이라는 것은 멸종위기종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에 이르러야 겨우 시행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또는 복원 종들은 모두 주변국으로부터 쉽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복원은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의 야생 개체군이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을 때 미리 그들을 관리하고 회복시켜 주는 방식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른 국가에서 종을 도입해야 하는 극단적 방법을 피하면서 이 땅의 고유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가장 바람직한 복원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 반달곰이 생존하고 있는 지역들이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강원도 양양-인제-화천을 잇는 산악지대는 물론이고, 덕유산에서도 곰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체수가 극히 적어진 상황에서는 작은 위협들도 종 자체의 멸종을 부르는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많은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포유동물이란 생태적으로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하며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안전한 서식지까지 너무 깊숙하게 드나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이 땅 모두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때가 됐다. 반달곰, 사향노루, 시라소니, 수달들이 인간과 충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 국가가 외국과 여러 가지 교역을 하려면 이제 국제 멸종위기종들을 함께 보호해야만 하는 새로운 국제무역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멸종위기종들을 이용해 상품을 만드는 일을 전세계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추진하는 등 멸종위기종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 생물다양성 보존에 대한 국가의 책무는 그 나라의 안보, 치안의 책임과 다름이 없는 중대한 것이 되었다. 원래 환경이라는 단어의 본질적 의미도 많은 생물종들의 건강과 다양성 보존에 있다. 이제는 우리의 자연 속에서 과연 어떤 동물들이 신음하고 있고, 어떤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지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볼 때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센터 소장 hansy@wildlife.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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