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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필진]“다람쥐가 먹을 도토리는 남겨둬야죠”

등록 2005-11-11 13:58수정 2005-11-11 13:58

요즘 야생 멧돼지가 도심까지 출현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개체수가 늘어나거나 영역을 다투다 벌어진 일일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멧돼지가 어느 주택에 나타나 119구조대원들이 출동한 일이 있었다.그리고 어젯밤에는 한 무리가 도로 위를 배회하다 달려오는 트럭에 치인 불상사까지 발생했다. 예전에는 듣보지도 못한 일이다. 한데, 이런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둔감하거나 문제시도 않은 것 같다. 외려 그런 흉포한 짐승에게 공격받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어쩜 '저돌적(猪突的)'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니 그리 나타내는 경계심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인간이 정한 가치기준으로 보면 사람의 생명보호가 우선이요, 그런것 들의 안위는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아쉬운 구석은 있다. 멧돼지가 그렇게 뛰쳐나오지 않으면 아니 되는 현실에 대해 누구하나 진지하게 숙고하거나 의견 개진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다. 오히려 섬멸해 버리자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서 느끼는 착잡한 소회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처음 멧돼지가 도심에 출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 멧돼지들이 드디어 못살겠다고 시위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흔히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거나 요구조건이 받아들려 지지 않을 때, 이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경우처럼 멧돼지도 자기들이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시위하는 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죽음도 불사한 비장한 몸부림이 아닌가.

멧돼지는 일반 사람이 생각하고 있듯이 그렇게 무모하거나 지능지수가 형편없는 동물은 아니라고 한다. 시력은 비록 1미터 앞도 제대로 못 보지만 뛰어난 후각과 청각으로 불편없이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기민성에 있어서도 시속 40키로미터로 내달릴 수 있으며, 추적자를 따돌리는 영민함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 짐승이 무슨 곡절이 없고서야 아무렇게나 행동을 하겠는가.

어제 나는 그 단서를 알만한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길섶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가 나무를 텅텅하고 타격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다가가 보았더니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상수리나무 곁에서 남자는 돌로 나무 몸통을 찍고 있고, 여자는 거기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줍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 다가서는 데도 그 일에 정신이 팔렸는지 일부러 무시하는지 하는 작업만 계속했다. 그래서 보다못해 나는 "다람쥐나 청설모가 먹을 것은 좀 남겨두시오." 하고는 비윗살이 상해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사람들은 얼마나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며칠 전에도 나는 산중턱에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 사람은 나무를 타격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발로 몸통을 차서 도토리를 털어 내고 있었다. 그의 배낭을 보니 그런 작업을 오래 했는지 거의 절반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수탈이나 진배가 없는 것이었다. 그토록 모조리 쓸어가 버리면 산짐승들이 무엇을 먹고 산단 말인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에 산보를 하다가 마주친 청설모 생각이 났다. 그 청설모는 추운 겨울인데도 눈밭을 누비고 있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듯 했다. 그 놈은 보기에도 그동안 얼마나 굶주렸는지 들피진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자기들이 먹을 양식을 사람들한테 빼앗기고 얼마나 원망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마치 그 몰골이 가난한 어느 아프리카 부족을 보는 듯 애잔했다. 그런데 최근 그런 현상의 멧돼지 소동을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저 무작정 소풍 삼아 내려와 배회했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 먹이를 찾아 나섰다면 이상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을까.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침해당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그 대비책이 시급하지 않은가. 말로만 자연보호를 외친다고 하여 무너진 자연이 복구되지는 않는다.

자연이 무엇인가. 그냥 그렇게 자유로이 놓아두는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야금야금 서식환경을 파괴하였으니 이런 짐승들이 어찌 가만 있으며 또한 함께 살것인가. 생태계의 교란현상은 사람이나 짐승에게 다 같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방치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하루 빨리 사람과 짐승이 공존공생하는 터전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사람의 생존환경이란 이런 동물들과도 어울려 살 수 있을 때만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멧돼지는 그것을 원하고 맨몸으로 시위하며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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