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얼큰한 대구매운탕의 쓰라린 뒷맛

대구./필진네트워크 쉬었다가자

대서양 대구어장 붕괴사

바람이 요즘처럼 옷깃을 파고들면 뜨끈한 대구매운탕이 제 맛을 내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근해에도 대구가 약간 잡히기는 하지만 90% 이상은 원양, 그러니까 북태평양에서 잡히지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구어장은 대서양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의 대구어장은 유명했지요. 끝이 없어 보이는 자연자원도 인간의 무지한 남획 앞에선 얼마나 속절없이 허물어지는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자연을 이용하기 전에 잘 알고, 그리고 절제하자고 뒤늦게나마 후회하게 됩니다. 자, 대구매운탕을 앞에 놓고 소줏잔만 바쁘게 비우시지 마시고, 이런 얘기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대서양 대구의 모습. 오른쪽 아래 잣대가 10cm인 걸로 보아 50cm는 넘어 보이는 중치이다./필진네트워크 쉬었다가자

초기 이주민들이 손쉽게 잡았던 대형 대구의 모습./필진네트워크 쉬었다가자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주에 처음 이주해 온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은 신대륙의 무궁무진한 자연자원에 흥분했다. 먼 바다의 대구가 1월에서 3월 사이 연안으로 알을 낳으러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대구가 너무 많아 어선들이 항해하기가 힘들 정도였고, 낚시가 없어도 뱃전에서 양동이를 내려 대구를 퍼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길이 180㎝, 무게 100㎏의 거대한 대구가 낚이기도 했다.

이런 전설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대구는 여러 세기 동안 뉴펀들랜드 지역 어민들의 삶을 가능하게 한 유일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 최대의 대구 어장은 1990년대 들어 완전히 붕괴됐다. 1992년 2년 시한으로 내려진 어획금지 조처는 현재까지 무제한 연장되고 있다. 도대체 뉴펀들랜드 대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뉴펀들랜드 어촌의 초창기 모습.

뉴펀들랜드의 대구잡이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배들이 대구를 쫓아 이곳에 드나들었고, 곧 이주민들이 캐나다 동부해안에 정착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어민들은 바람의 방향과 물새들의 움직임 따위를 바탕으로 대구를 잡는 전통적인 어업을 계속했다. 1950년대 들어 공장식 대형 저인망 어선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연안에서의 전통어업은 그대로였지만 먼 바다에서 거대한 그물로 바닥을 훑는 배들이 겨울철 대구의 집결지를 공략했다. 어획량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1500년에서 1750년까지 250년간 잡은 대구가 800만t이었는데, 그 만한 양을 1960년에서 1975년까지 불과 15년 사이 잡아냈다.

깊은 바다에 사는 대구는 성장이 느린 편이다. 4-5년이 돼야 성숙하고 6-7년부터 산란을 한다. 사람입에 들어갈 만큼 커다란 머리의 대구가 되려면 10년이 훌쩍 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획은 큰 대구에 집중됐다.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가장 큰 딜레마는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19세기까지 수산업계에선 “바닷물고기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널리 통용됐다. 큰 어장이라도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어민들은 한때 고기가 잡히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고기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에서 알고 있었다. 설사 남획이 국지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빚더라도 더 작은 물고기를 잡는다거나 더 넓은 해역에서 어획을 함으로써 남획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들어 대구 어획량은 평소의 3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캐나다 정부는 200해리 새 해양법 체제 아래 처음으로 대구 자원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수산자원학에 관한 교과서를 들쳐보면 수많은 수식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 원리는 한 마디로 수산자원의 재생능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에서 어획량을 최대로 높이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내면 그 먹이는 늘어나기 때문에 나머지 물고기의 성장이 빨라진다. 따라서 생식능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잡아낼수록 이익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깊은 바닷속에서 회유하는 물고기의 삶과 죽음을 방정식의 변수로 옮긴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어쨌든 캐나다 정부는 대구자원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요즘도 거대한 대구가 낚시로 잡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다./필진네트워크 쉬었다가자

캐나다 정부는 연구 끝에 대구 자원량의 20%로 어획량을 한정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1988년엔 1976년보다 대구 자원이 5배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연안 어민들은 이런 낙관과는 달리 80년대 초반부터 불길한 조짐을 발견하고 있었다. 어획량은 해마다 증가했지만 “큰 고기가 안 잡힌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어민들의 ‘비과학적’인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구어업은 이 지역에서 민감한 정치적 현안이다. 연근해 어민들의 자원감소 호소가 빗발치자 정부는 86년 과학자들에게 조사를 시켰다.

1986년 키츠 보고서는 이미 적정 어획량의 3배까지 남획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논란이 벌어지자 새로운 위원회가 꾸려졌고, 88년의 앨버슨 보고서는 “최근 둔해지긴 했어도 자원량은 증가하고 있다”는 새로운 보고서를 냈다. 조사내용에서의 문제가 드러나자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당황한 정부는 독립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1990년 해리스 보고서는 대구 자원량이 알고 있던 것의 절반 이하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일련의 수산 과학자들의 대구자원 조사는 과학사회학에서 흥미로운 연구주제이다. 자원예측의 불확실성은 의도적으로 묵살됐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실제보다 더욱 자신 있어 보이는 예측을 하도록 몰아갔다. 전체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연안어업은, 수많은 어선이 제각기 다른 전통적인 어법을 채용해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대신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과학자들이 알기 쉬운 형태로 자료를 집계하는 원양어업이 조사결과를 좌우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1992년 긴급 어획금지 조처를 내렸다. 4백년간 계속되던 뉴펀들랜드 최대 산업은 무너졌다. 캐나다 역사상 최대인 3만명의 실직사태가 났다. 어황조사를 위한 시험조업조차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대구자원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백년 계속된 세계 최대의 대구어장은 말 그대로 붕괴한 것이다. 일부 연구를 보면 대구의 체형조차 바뀌고 있다. 비쩍 마른데다 등이 휘고 머리가 아래로 구부러진 모습이 두드러진다. 텅 빈 바다에서 먹이가 부족하자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찾느라 체형이 변형됐다는 추정이 나온다. 최근엔 찬 물을 좋아하는 대구가 떼로 얼어죽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먹이부족과 오염으로 인한 바다바닥의 산소부족으로 쇠약해진 탓이다.

위 사진은 정상적인 대구. 아래는 실험실에서 석달간 굶긴 대구의 모습. 90년대 중반 잡힌 대구의 모습은 대체로 아래 대구와 비슷했다./필진네트워크 쉬었다가자

뉴펀들랜드 대구어장은 가렛 하딘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곳에선 파멸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비극적 사례는 먼 캐나다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적인 어획량을 기록했던 1920년대 정어리와 70년대 참조기, 80년대 쥐치 등은 자원남획이 고갈로 이어진 분명한 사례이다. 이런 자원붕괴를 늦추는데 과학은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최근 바다의 불확실성을 감안한 생태학적 접근방법과, 경험에서 비롯한 어민의 전통지혜를 살리는 어민참여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