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간 유기견 ‘토리’ 보살폈던 <한겨레> 인턴기자의 추억
절뚝거리며 풀숲 킁킁대던 검은 아이…“산책 맘껏 하고 살아!”
청와대로 입양되기 닷새 전인 지난달 21일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토리를 다시 만났다. 절뚝거리던 다리도 다 나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숨 막히는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가 아픈 유기견 토리를 안고 서울시 중구 장충단공원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7월 23일 서울시 중구 퇴계로 ‘케어 입양센터’에서 산책봉사를 하면서다. 돌아오는 길엔 질퍽한 개똥도 제대로 밟았다. 토리를 안은 채 근처 의자에 앉아 양말로 똥을 닦았다. 고생해서 그런지 토리와 같이 걸었던 길, 당시 상황, 토리의 성격까지 모두 생각이 난다. 다만 그땐 몰랐다. 청와대로 입양될 줄은.
청와대로 입양된 토리가 동물권단체 ‘케어’에게 구조된 건 2015년 10월이다. 토리는 줄에 묶인 채 털이 눈을 다 덮을 때까지 방치됐다. 주인은 가끔 찾아와 밥을 줬다. 몽둥이로 위협하고 발로 찼다. 학대가 일상이었다. 결국 토리는 같이 살던 개가 꼬챙이에 찔려 죽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내가 토리를 산책시킨 건 토리가 그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벗어난 지 막 9개월째 되던 시기다.
“다리가 아픈 아이니까 공원까지 안고 가셔야 돼요. 공원에서 산책시켜 주면 돼요.”
담당자가 짧은 털에 작고 검은 개를 안고 나왔다. 진한 눈물 자국, 한 곳만 응시하는 멍한 눈빛, 거친 숨을 내뱉던 토리를 보고 단숨에 아픈 사연을 가진 개란 걸 알았다. 게다가 다리까지 아프다니. 학대를 당했냐고 물었더니 관절이 원래 약하다고 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활동가에게 안겨있는 토리. 임세연 교육연수생
오른쪽 어깨에 물, 휴지, 배변 봉투가 담긴 에코백을 멨다. 담당자에게 토리를 건네받아 오른손으론 토리 몸을 감싸고 왼손으론 엉덩이를 받친 뒤 공원으로 출발했다. 길을 따라 10~15분 정도를 올라가면 장충단공원에 도착한다. 짧은 거리라 괜찮을 줄 알았지만, 토리는 생각보다 무겁고 묵직했다. 손목이 아팠다. ‘15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토리를 안고 걸어가면서 계속 토리에게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공원에서 풀냄새 맡게 해줄게.”
공원에 도착했다. 토리를 내려주자 토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 시작했다. 흙, 풀 가릴 것 없이 킁킁거리며 모든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좋은 걸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쉬지도 않았다. 다리를 절뚝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힘을 주어 줄을 당겼고 나는 끌려가듯 따라갔다. 30분 정도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쉬워하는 토리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 후로 토리가 더는 보이지 않아 입양된 줄 알았다. 토리를 다시 본 건 9개월 뒤인 지난 3월 24일이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제21회 코리아 펫쇼’에서다. ‘케어’ 부스로 봉사를 갔다가 토리를 봤다. 입양센터 개들을 소개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데려온 개들 중 하나였다.
‘아직 못 갔구나…’
내가 못 본 9개월 동안 토리는 입양해줄 누군가를 온종일 기다렸을 것이다. 또는 차로 먼 길을 오가며 입양자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소형견에 성격도 온순해 비교적 일찍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다리는 다 나은 듯했다. 절뚝거리지도 않았다. 그것만은 다행이라며, 꼭 새로운 가족을 만나길 바라며 또다시 발길을 돌렸다.
근데 그 가족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니. 지난 5월 대선 기간, <한겨레>와 동물자유연대, 카라, 케어 등 동물단체가 ‘유기견을 대한민국 퍼스트 도그로!’ 시민 캠페인을 벌였다. 케어가 토리를 추천한 것에 한 번 놀랐고, 당시 당선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대선후보가 ‘검은 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는 이유로 토리 입양을 약속한 것에 두 번 놀랐다. 얼마나 기뻤는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청와대 인맥, 아니 견맥’이 생겼다며 자랑했다.
지난달 26일 토리가 청와대에 입양됐다. 토리를 안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임세연 인턴기자가 청와대로 가기 전 토리의 마지막을 기록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지난 7월 26일 토리가 드디어 청와대에 입양됐다. 들어가기 닷새 전인 지난 7월 21일 취재차 다시 만난 토리는 행복해 보였다. 껑충껑충 뛰며 고양이 장난감을 정신없이 갖고 놀았다. 뺏기지 않으려 으르렁거리는 용감한 모습도 보였다. 담당자 품에 안겨있을 땐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다리도 다 나았고 더는 혈당 약도 먹지 않았다.
남자한테 학대를 당했던 토리가 혹시나 물지는 않을까 했던 걱정과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 품에 가니 온순해졌다고 한다. 평생 함께할 사람인 걸 알았나 보다. 이제 토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양이 ‘찡찡이’, 풍산개 ‘마루’와 함께 청와대에서 산다. 혼자 외로운 4년 평생을 견뎌낸 토리에도 이제 가족이 많이 생긴 것이다. 이제 웃을 일만 남았다.
토리야, 무섭고, 아프고, 외로웠던 지난 2년의 기억은 이제 잊고 청와대 앞마당에서 네가 좋아하는 산책 마음껏 하면서 살아!
임세연 교육연수생(인턴기자) seyouny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