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가뭄 스트레스냐 오랜시간에 걸친 생물시계 일치냐

등록 2018-01-24 16:25수정 2018-01-24 17:23

60년만에 한 번 꽃 피우고 죽는다는 조릿대
2015년 전국 일제개화 절정 원인 두고 논란
“가뭄 누적 따른 환경스트레스 탓” 논문에
“생물시계 따른 ‘광역 동조개화’” 반박논문

2015년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개화한 조릿대. 자주색 이삭에 연노랑색으로 붙어있는 것이 각각의 꽃이다.  박석곤 교수 제공
2015년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개화한 조릿대. 자주색 이삭에 연노랑색으로 붙어있는 것이 각각의 꽃이다. 박석곤 교수 제공
조릿대(Sasa borealis)는 쌀을 이는 조리를 만들 때 쓰인데서 이름이 유래한 키 작은 대나무다. 전국에 자생하는 이 조릿대 군락에서 2013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개화가 2015년에 절정을 이뤘다.

강원대 생명과학과 정연숙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야생화를 주제로 한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집한 198건의 조릿대 개화 사례를 조사한 결과, 83%인 164건이 2013년 이후 4년 동안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절반 가까운 94건은 2015년 5~9월에 집중됐다.

같은 종의 식물이 특정한 시기에 일제히 꽃을 피우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나무의 경우는 다르다. 대나무의 개화는 수십년에서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주기로 나타나고, 개화해 씨앗을 남긴 나무는 대부분 말라죽는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2015년 전국의 조릿대 군락에서 개화가 절정을 이뤘다는 것은 조릿대들이 평생 한 번 뿐인 개화 시기를 서로 일치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4월 한국식물학회지에 실은 논문에서 정 교수팀은 이 일제 개화를 촉발한 요인으로 가뭄이라는 환경요인을 지목했다. 심한 가뭄으로 누적된 환경 스트레스가 개화하기에 충분히 성숙한 조릿대들에게 꽃을 피우도록 유도한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 이런 연구 결과를 정면 반박한 논문이 실려 관심을 끈다. 박석곤 순천대 산림자원·조경학부 교수와 최송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최근의 조릿대 일제 개화가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발생해 화제가 된 점에 주목해, 일본 개화 지역 가운데 특히 인터넷 검색 빈도가 높은 아이치현, 효고현, 시즈오카현 등 3곳과 국내 개화 지역인 전남 광양 백운산을 함께 분석했다. 조릿대가 개화한 곳과 개화하지 않은 곳의 입지환경조건, 기온, 강수량, 토양수분함유량 등을 따져봤지만 이런 환경요인들과 개화 사이의 상관성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들은 “이들 4곳에서는 과거에도 봄가뭄이 이어졌던 시기가 상당히 잦았지만, 이 시기에 조릿대가 개화했다는 문헌이나 뉴스 보도는 없었다. 또 4곳에서 모두 조릿대가 개화한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온이 평년치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지만, 강수량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자주 나타난 고온현상을 조릿대의 일제 개화 원인으로 지목하기엔 타당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조릿대 개화는 몰라도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생육 환경이 전혀 다른 조릿대 군락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일제 개화가 환경 스트레스에 의해 촉발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문의 주저자인 박 교수는 “최신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조릿대 개화는 외적 환경의 영향보다 나이를 먹으면 꽃을 피우게 하는 유전자로 작동되는 생물시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관찰된 조릿대 일제 개화를 ‘광역동조개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열대성 식물인 조릿대류가 온대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는 개화주기가 짧을수록 단독 개화하게 돼 근친 교배 확률이 높고, 개화하지 않은 조릿대와의 경쟁에서도 밀려 다음번 유성번식 가능성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조릿대의 장주기 개화 특성이 점점 강화되는 가운데 우연히 개화 시기가 겹쳐 생물시계가 맞춰질 수 있는 것이죠.” 박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 정착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런 과정을 통해 동일한 장주기 생물시계를 갖게 된 조릿대 개체만이 최근 광역동조개화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에 한국과 일본에서 자라는 모든 조릿대가 개화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아직 생물시계가 일치되지 않은, 즉 개화주기 동조화가 안된 조릿대도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설명은 그러나 아직 가설일 뿐이다. 교신저자인 최 교수는 “전국에서 나타난 일제 개화는 과학적으로 정확히 입증할 수는 없으나 열대성 식물인 대나무류가 온대 지방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으로 채택한 ‘광역동조개화’의 결과로 보인다”면서 “광역동조개화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은 앞으로 남은 과제”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와 최 교수의 연구 결과를 접한 정 교수는 “조릿대의 개화가 환경보다는 생물시계로 돌아가는 개화 사이클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시각도 있지만, 2015년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점봉산 등에서 일제히 개화한 조릿대의 생체 나이가 다 비슷하다는 것은 무리한 가정”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조릿대의 개화 원인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어 서로 논쟁할 의미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열매를 맺은 전남 광양 백운산 조릿대.  박석곤 교수 제공
열매를 맺은 전남 광양 백운산 조릿대. 박석곤 교수 제공

개화해 열매를 맺어 번식한 뒤 고사한 조릿대.  박석곤 교수 제공
개화해 열매를 맺어 번식한 뒤 고사한 조릿대. 박석곤 교수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