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평화의 꽃밭’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오늘날 국가 안보는 국경에서 가해지는 군사적 위협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안보는 그 핵심적 가치와 위협 영역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안보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자원부족, 인구증가 등 지구 위기를 위협 요인으로 추가한다.
남과 북이 화해를 향해 달리고 있다. 여기에 지구 위기에 대한 대응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구 위기 대응은 그 속성상 정치 이념을 넘는 보편성이 있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 위기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990년대 남과 북이 각기 위기에 처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지구 위기에 남북이 왜 함께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북한 위기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인 존 페퍼는 2008년에 ‘북한은 왜 지구 위기의 카나리아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기아 사태를 다루었다. 앞으로 지구 위기도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존 페퍼는 북한 농업이 1990년대에 붕괴한 것은 경작 방식의 후진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성 때문임을 주장했다. 북한은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농업이 발달한 편에 속했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1980년대 말 이전까지 옛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석유를 매우 싸게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싼 석유 공급이 갑자기 끊기면서 석유가 부족한 세상을 살아야만 했다.
최근 30년간 북한의 곡물 생산.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 자료
석유 부족으로 비료가 부족했고 농업 기계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식량 생산이 감소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경사지의 나무를 베어 다락밭(계단밭)을 확대했다. 하지만 산림생태계를 희생하고 조성한 다락밭은 지속가능하지 못했고, 지력이 떨어져 점점 황폐해졌다. 이러한 산림 훼손으로 큰비로 인한 산사태가 일어나고 농경지까지 피해를 보게 돼 식량 생산에 피해가 심각했다.
이 상황에서 1995년 대홍수로 인해 급류가 겉흙을 쓸어가고 논 경작지 자리에 돌과 나무가 덮쳐 40% 이상이 불모지가 됐다. 북한의 경제력으로는 석유 가격 상승, 기상재해, 식량 생산 감소라는 연속적인 삼중 타격에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수많은 북한 동포가 끔찍한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남한 위기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에서 2005년에 “온실가스 자료와 국제 기후 정책”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1998년 금융 위기 당시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과 국민총생산(GDP)에 대해 특별히 다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GDP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이 상관관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GDP가 증가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거의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 1998년 GDP가 크게 줄어들 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남한 국민총생산(GDP)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변화율. 세계자원연구소(WRI) 자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산업이 위축됐음을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극심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다. 이는 단지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가 외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가 지배했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자유, 정의, 평등, 연대 등이 아니라 IMF 탈출, 생존, 소비, 성장이어야 했다. 우리의 가치도 무너졌다.
우리나라 산업은 여전히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세계 9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다. 하지만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가 2017년에 발표한 각국의 에너지 안보 순위에서 한국은 125개국 중 64위로, 에너지 안보 상황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 협력
1990년대 남과 북의 어려움은 서로 다른 형태로 전개됐지만, 그 밑바탕엔 자원 빈국에 과다 인구라는 같은 취약성이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위기는 두 체계 간의 정치·군사적 안보 차원을 넘는 민족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물, 식량 등 기반자원의 부족과 그 부정적 영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위험은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여기에 기후변화는 위기를 증폭시킨다. 이때 식량 수출국이 수출을 중단한다면 잘 살고 못 살고에 상관없이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제적인 화석연료의 제한이 예정돼 있다. 이것은 에너지에 기반을 둔 산업으로 체계화된 남과 북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한반도는 지구 위기의 시대에 취약한 지역에 속한다. 한반도는 지구 위기를 함께 겪고 대비해야 하는 공동 운명체이다. 민족 공동체도 바로 이 공동 운명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은 제로섬 게임을 벌여왔다. 제로섬 게임은 누군가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어버려야만 한다. 이제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를 풀고 남북이 새로운 가치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유능하며 더 풍요롭고 더 자유롭고 더 안전한 세계로 나갈 수 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상이라고 치부하면 남북 대결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 남북 대결은 지구 위기에 함께 대응해야 하는 이 시기에 민족의 역량을 갉아먹는 비극으로 가득 찬 망상일 뿐이다.
남북 문제는 단순히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트럼프도 김정은을 만나지 않는가? 지구 위기의 시대에 남북은 1990년대처럼 반면교사로서가 아니라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보여져야 한다.
한반도는 공기를 자유롭게 주고받고 나누며 함께 숨 쉬는 공동체이다. 이미 오천년 이전부터 ‘숨’의 통일을 이뤄왔다. 지금 대한민국은 섬이다. 동서남쪽으로는 자유롭게 걸어갈 수 없는 바다이고, 북쪽은 가로막힌 땅이다. 대한민국은 섬이 돼서는 안 된다. 통일은 오천년 전부터 만주 벌판을 달리던 우리 역사를 되찾는 길이며, 100여년 전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길이며, 더욱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다.
한반도에 황사가 들어오면, 평양에도 서울에도 황사가 들어온다.
[참고문헌]
전영신, 2014: 통일한국의 대기환경 재해를 대비하는 남북한 협력과제, 통일부 통일교육원
홍용표, 2004: 황사와 안보, 한중황사조사연구단의 탐사보고서 황사, 동아일보사
FAO, 2011: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ECURITY ASSESSMENT MISSION TO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http://www.fao.org/docrep/014/al982e/al982e00.htm
John Feffer, 2008: Mother Earth's Triple Whammy. North Korea as a Global Crisis Canary, https://apjjf.org/-John-Feffer/2785/article.html
World Resources Institute, 2005: Navigating the Numbers Greenhouse Gas Data and International Climate Policy, http://pdf.wri.org/navigating_numbers.pdf
World Energy Council, 2017: World Energy Trilemma Index | 2017, https://www.worldenergy.org/wp-content/uploads/2017/11/Energy_Trilemma_Index_2017_Full_report_WEB2.pdf
대기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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