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뭔지 모르고 잡았는데… 허걱!
수염풍뎅이는 검정풍뎅이 무리 가운데서 가장 크고 특이한 모습을 지닌 종이다. 특히 수컷의 더듬이가 잘 다듬어 휘어진 수염 같기도 하여 ‘수염풍뎅이’라 한다. 이 종은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 그리고 서울을 거쳐서 대구와 제주에서까지 채집된 과거 기록이 있다. 한반도 전역이 이들의 삶터였던 것이다.
그런데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 수염풍뎅이가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뿐,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런 상태는 1999년까지 30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다 다행히 한 대학의 생물학과 학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크고 특이해 보여 채집한 것이 나중에 수염풍뎅이로 밝혀졌다. 그 소문이 환경 관련 기관에까지 알려졌고, 그 학생은 불법채집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 학생에게는 불행이었을 수 있지만, 그 채집 기록은 전문가들에게 훌륭한 정보가 되었다. 몇 년 전에 멸종위기종 조사 요청으로 그 장소를 찾았다. 도농복합의 작은 소도시와 좀더 큰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강 위에 놓인 커다란 다리 위였다. 전해 들은 것처럼 다리의 차도와 인도 바닥에 수염풍뎅이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에 치여 나뒹구는 사체들이 많았고, 인도에도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은 것이 여럿 있었다. 모여든 집단의 크기로 보니 그 근처가 이들의 중심 삶터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이동할까 싶어 주변을 추적해보니 약 2km 정도 떨어진 시내 중심에서도 한 개체가 관찰되었다.
다리에 올라온 수염풍뎅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가 궁금했다. 밤과 아침에 걸쳐 주변을 조사해보니, 그들의 진짜 삶터는 다리 밑의 하천변 충적지였다. 상당부분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작물재배지가 점령하였지만, 다행히 물가 주변에는 자연스런 풀밭이 관목숲이 남아 있었다. 그곳의 토양 속이 바로 다리 위로 올라온 수염풍뎅이의 고향이었다. 대부분의 풍뎅이들이 애벌레시절을 땅속에서 나무나 풀의 뿌리를 갉아 먹고 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강한 가로등 불빛이 이들을 높은 다리 위까지 유인해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게 한 것이었다. 멸종위기종인 수염풍뎅이의 처지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유일한 삶터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하고 있는 슬픈 현장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하천가의 충적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곳도 이미 시내 쪽의 강가는 흙을 덮고, 시멘트로 발라서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수염풍뎅이는 우리에게 좋고 가치 있는 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삶터는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다 싶은 하천충적지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주민의 편의시설을 설치하거나, 홍수조절을 구실로 시멘트로 둑을 쌓는다. 어디엔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수염풍뎅이들의 삶터도 이렇게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전국의 강가가 거의 모두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곤충은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버려진 조각 같은 곳을 삶터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면적도 작다. 따라서 곤충을 보호하는 것은 거대한 국립공원 같은 곳을 필요로 하는 큰 동물의 보호와는 다르다. 이제라도 곤충과 같은 무척추동물의 보전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보전 정책에도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해철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사 culent@chol.com
박해철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사 culent@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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