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희귀 자연사 박물관에 쿵쿵… 공단·항만공사?

등록 2005-12-27 18:05수정 2005-12-28 14:21

이진리 해안에 있는 다양한 타포니 암석들. 바위 측면에 벌집처럼 파여 있는 것이 타포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이진리 해안에 있는 다양한 타포니 암석들. 바위 측면에 벌집처럼 파여 있는 것이 타포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울산 이진리 해안

“공해로 찌들린 국가공단 안 해안에 웬 자연사박물관?”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국가공단의 동쪽 끝 이진리 해안에 가면 해식애, 파식대, 시스택(촛대바위 모양의 바위), 타포니(벌집모양의 구멍) 등 다양한 해안지형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수천~수만년에 걸친 풍화와 침식작용이 화강암으로 이뤄진 암석에게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를 새겨 놓은 것이다.

50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이로 이뤄져 있는 차일암.  김광수 기자
50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이로 이뤄져 있는 차일암. 김광수 기자

“풍화·침식이 빚은 지구의 예술작품”

지질학적 자료로도 보존할 가치가 높고 관광자원으로서도 높은 활용도가 기대되는 이 암석군들이 개발의 삽날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길이 3.7㎞에 이르는 이진리 해안 가운데 1㎞ 구간이 공단조성 과정에서 훼손되면서 이 암석군을 볼 수 있는 해안의 길이는 이미 2.7㎞로 줄어든 상태다. 울산지역 환경단체들은 남은 해안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이 일대의 중요 암석들을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지난 5월 문화재위원회는 “보존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미 3.7㎞ 가운데 1㎞ 훼손

이에 따라 울산신항만 공사 구간과 온산공단 입주기업들의 공장용지 조성 예정 터에 포함된 대다수 암석들의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순한 호랑이 모양인 범바위가 당장 남방파제 끝자락에 맞물려 이전을 해야 할 형편이다. 작은 범바위 등도 바다 매립공사와 함께 새로 들어설 도로에 편입돼 사라질 처지다.

범바위와 500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서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거대한(남북 길이 8·동서 너비 170m) 단일 암괴인 차일암엔 오랜 풍화작용 등에 의해 형성된 달걀 모양의 바위인 핵석, 바위를 잘라놓은 듯한 판상절리, 따개비가 오랜 세월 바위를 파먹어 형성된 벌집 모양의 구멍 등이 산재해 있다. 또 파도에 의해 암반 위에 세숫대야 모양으로 형성된 풍화호, 바닷 바람에 의해 바위에 여러 모양의 구멍이 뚫린 염풍혈 등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 지형 및 지질학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물이 빠질 때 볼 수 있는 수직 절벽에는 선사시대 유적인 천전리 각석과 유사한 기하학적인 문양도 새겨져 있다. 문양은 석영 알갱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유두 모양이다. 차일암 위에 의연하게 서있는 해송들은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한쪽으로만 자라서 만들어진 편형수의 예로 적합하다. 해안의 뒷산에 두부를 쌓아 놓은 듯 차곡차곡 재어져 있는 돌산은 보는 것 만으로도 지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산 쪽에서는 바다 쪽과는 또 다른 화강암의 다양한 풍화현상을 볼 수 있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같은 ‘토오르’인 남근석이 대표적이다.

문화재위 “보존가치 없다” 결정

환경단체들은 자연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이진리 해안은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진리를 자연사박물관으로 만든다면 근처에 있는 간절곶, 진하해수욕장, 서생포왜성, 외고산 옹기마을까지 연계된 새로운 관광루트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석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은 “개발의 상징인 국가공단 안에 원형이 보존된 해안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보존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진리 해안 암석들을 국가문화재가 안된다면 지방문화재로라도 지정해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보존가치 정말 없나?
‘이곳만은 꼭 지키자’ 국민공모전서 대상

이진리 해안이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주장은 환경운동가들만의 주장은 아니다. 이진리 타포니군 해안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올해 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이곳만은 꼭 지키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꼭 지켜져야 할 곳으로 신청된 전국의 68가지 자연·문화유산 가운데서도 보전대상 1호로 뽑힌 것이다.

이 이진리 해안의 암석군들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가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한 과정은 어땠을까?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위원회로부터는 결론만 넘어온다”고 밝히고, 이인규 분과위원장도 “결정 과정은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입을 다물어 알기 어렵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지정 논의과정에 대한 문화재청 관계자의 설명과 타포니 암석군에 대한 지질학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런 암석군이 이진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천연기념물 지정에 대한 현지의 강력한 반대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천연기념물 지정은, 원하는 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쪽도 있기 때문에 마치 재판을 하는 것처럼 논의된다”며 “지정으로 엄청난 불이익이 야기된다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리의 경우 이것은 울산신항만 조성과 온산공단 확장사업이 될 터이다.

한때 천연기념물분과위원을 지냈던 김수진 서울대 명예교수(지질학)는 “천연기념물 지정 논의과정에는 분과위원들의 전공이 문제가 된다”며 “타포니 암석군은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진리의 것이 규모가 크고 국내에 아직 그런 천연기념물 지정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지난 5월 이진리 해안 문제 논의 때의 천연기념물분과위 구성을 보면 위원장을 포함한 16명의 위원 가운데 지질 쪽이 6명으로 식물쪽(4명) 보다 많다. 하지만 지질쪽 전문분야를 좀더 좁히면 고생물이 2명, 퇴적·동굴·지리지형·해양지질이 각 1명씩이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