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리 해안에 있는 다양한 타포니 암석들. 바위 측면에 벌집처럼 파여 있는 것이 타포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울산 이진리 해안
“공해로 찌들린 국가공단 안 해안에 웬 자연사박물관?”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국가공단의 동쪽 끝 이진리 해안에 가면 해식애, 파식대, 시스택(촛대바위 모양의 바위), 타포니(벌집모양의 구멍) 등 다양한 해안지형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수천~수만년에 걸친 풍화와 침식작용이 화강암으로 이뤄진 암석에게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를 새겨 놓은 것이다.
“풍화·침식이 빚은 지구의 예술작품”
지질학적 자료로도 보존할 가치가 높고 관광자원으로서도 높은 활용도가 기대되는 이 암석군들이 개발의 삽날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길이 3.7㎞에 이르는 이진리 해안 가운데 1㎞ 구간이 공단조성 과정에서 훼손되면서 이 암석군을 볼 수 있는 해안의 길이는 이미 2.7㎞로 줄어든 상태다. 울산지역 환경단체들은 남은 해안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이 일대의 중요 암석들을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지난 5월 문화재위원회는 “보존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미 3.7㎞ 가운데 1㎞ 훼손
이에 따라 울산신항만 공사 구간과 온산공단 입주기업들의 공장용지 조성 예정 터에 포함된 대다수 암석들의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순한 호랑이 모양인 범바위가 당장 남방파제 끝자락에 맞물려 이전을 해야 할 형편이다. 작은 범바위 등도 바다 매립공사와 함께 새로 들어설 도로에 편입돼 사라질 처지다.
범바위와 500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서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거대한(남북 길이 8·동서 너비 170m) 단일 암괴인 차일암엔 오랜 풍화작용 등에 의해 형성된 달걀 모양의 바위인 핵석, 바위를 잘라놓은 듯한 판상절리, 따개비가 오랜 세월 바위를 파먹어 형성된 벌집 모양의 구멍 등이 산재해 있다. 또 파도에 의해 암반 위에 세숫대야 모양으로 형성된 풍화호, 바닷 바람에 의해 바위에 여러 모양의 구멍이 뚫린 염풍혈 등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 지형 및 지질학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물이 빠질 때 볼 수 있는 수직 절벽에는 선사시대 유적인 천전리 각석과 유사한 기하학적인 문양도 새겨져 있다. 문양은 석영 알갱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유두 모양이다. 차일암 위에 의연하게 서있는 해송들은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한쪽으로만 자라서 만들어진 편형수의 예로 적합하다. 해안의 뒷산에 두부를 쌓아 놓은 듯 차곡차곡 재어져 있는 돌산은 보는 것 만으로도 지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산 쪽에서는 바다 쪽과는 또 다른 화강암의 다양한 풍화현상을 볼 수 있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같은 ‘토오르’인 남근석이 대표적이다.
문화재위 “보존가치 없다” 결정
환경단체들은 자연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이진리 해안은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진리를 자연사박물관으로 만든다면 근처에 있는 간절곶, 진하해수욕장, 서생포왜성, 외고산 옹기마을까지 연계된 새로운 관광루트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석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은 “개발의 상징인 국가공단 안에 원형이 보존된 해안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보존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진리 해안 암석들을 국가문화재가 안된다면 지방문화재로라도 지정해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50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이로 이뤄져 있는 차일암.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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