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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새만금 울던 날 광덕산은 웃었다”

등록 2006-01-10 18:11수정 2006-01-11 13:45

광덕사와 안양암이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길 가운데 화단을 만들고 등산로와 하산로를 구분해 놓은 등반로로 등반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광덕사와 안양암이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길 가운데 화단을 만들고 등산로와 하산로를 구분해 놓은 등반로로 등반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광덕사·안양암, 개발 차량 통행금지 승소
시민·등반객 함께 나선 환경보전 모범사례

서울에서 새만금 개펄의 운명이 걸린 ‘새만금 소송’ 항소심 선고가 내려진 지난달 21일, 천안에서도 충청권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광덕산의 미래가 걸린 환경소송에 대한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허용석)가 맡은 이 ‘광덕산 소송’에서는 새만금 소송과는 정반대로 ‘환경’이 웃었다.

‘광덕산 소송’의 정식 사건명은 ‘자동차 통행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다. 발단은 한 개발업자가 광덕산 입구에서 정상 쪽으로 등반로를 따라 1.7㎞ 가량 올라간 산 중턱에 택지를 조성해 건물을 지으면서 비롯됐다. 광덕산은 해발 699m로 높지는 않지만 휴일마다 멀리 수도권에서까지 수천명의 등반객이 몰려와 자연을 만나는 곳이면서, 인근 계룡산 국립공원보다도 특산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특히 전체 식물종 가운데 귀화식물의 비중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생태적으로도 주목받는 곳이다.

광덕산 중턱 등산로 옆에 조성된 택지와 건물. 광덕산 지키기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안양암 주지 성탁스님(오른쪽)과 총무 대용스님. 안양암이 절 입구에 만든 연못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 있다.
광덕산 중턱 등산로 옆에 조성된 택지와 건물. 광덕산 지키기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안양암 주지 성탁스님(오른쪽)과 총무 대용스님. 안양암이 절 입구에 만든 연못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 있다.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산 입구에 있는 광덕사와 안양암은 광덕산 중턱에 건축물이 늘고 등반로로 차량이 계속 지나다닐 경우 광덕산의 훼손을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2003년 11월 절 소유지를 지나가는 등산로 곳곳에 화단과 돌담 등을 설치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도록 길 폭을 좁혔다. 그러자 광덕산 중턱에 건물을 지은 업자가 “통행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안양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농지정리를 한다고 해서 중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는데 알고보니 택지를 조성하고 있어서 ‘등반객을 위해 사찰 경내지에 내준 길을 통과해서 건물을 지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여러 번 통보했다”며 “그런 통보를 모두 무시하고 한밤중에 무슨 군사작전이라도 하듯이 건축자재를 실어 올려 정원에 연못까지 갖춘 건물을 지어놓고는 통행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산 지키자” 등산로 좁혀

안양암 총무 대용스님(48)은 “옛날에 절 위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이 경운기를 몰고 다니면서 등반로가 조금씩 넓어지기는 했지만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업자가 멋대로 등산로 주변을 깎아내 길을 넓혔다”며 “우리는 등반로를 예전 상태로 복구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맞붙은 법정공방에서 법원은 “광덕산의 자연환경과 등반객·사찰 보호를 위해 자동차까지 이용할 수 있는 통행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광덕사와 안양암 스님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결정은 또한 두 도량의 광덕산 지키기에 함께한 지역 환경단체, 광덕산을 자연환경보전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6만여명의 천안시민과 등반객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기도 했다. 오승화 천안아산환경연합 부장은 “법원이 업자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이는 등산로 주변의 도미노식 난개발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법원의 결정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환경’이 법정에서 ‘개발’과 싸워 만들어 낸 이 흔치 않은 승전보는 그러나 같은날 서울고등법원 특별4부(재판장 구욱서)가 내린 새만금 소송 판결 소식에 가려졌다. 대전에서 발행되는 지방지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느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다 보니, 주말마다 광덕산을 찾는 천안시민들조차 대부분 모른 채 지나가버린 것이다.

천안시민 6만명 서명참여

광덕산을 지키기 위한 광덕사와 안양암의 노력은 광덕산을 자주 찾는 등반객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불교환경연대는 지난해 11월 펴낸 <2005 푸른 사찰 사례집>에서 “개발반대 입장에 선다고 모두 환경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안양암의 광덕산 보존활동은 진심에 기반한 개발저지운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광덕사와 안양암이 경운기도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등반로를 철저히 ‘원상복구’한 것은 두 도량에게도 해마다 20~30가마 가량 되는 경내림에서의 호두수확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등반로의 ‘원상’이 어땠는지 모르는 많은 등반객들에게 등반로를 좁힌 것은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스님들은 등반객과 천안시민들의 이해를 얻기 위해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 위 등반로 옆에 있던 사찰림 관리용 건물을 헐어냈고, 적잖은 임대수입을 가져다 주던 등산로 초입의 식당을 철거했다. 그 자리에는 연못을 조성해 흰 연꽃을 심었고, 꽃나무 2000여 그루를 따로 구입해 시민환경단체들과 함께 꽃길을 꾸몄다. 지난해 5월에는 5천여명분의 점심 식사를 준비해 절 옆 밭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50여만 천안시민 가운데 6만여명이 넘는 시민과 등반객이 서명에 참여하고, 기독교계 단체까지 종교의 벽을 훌쩍 넘어와 스님들의 광덕산 지키기에 합세한 것은 이런 진심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진심이 받아들여진 결과”

‘광덕산 소송’은 개발업자가 항고한 상태여서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업자가 스님들을 형사고소한 사건도 아직 결론이 안 났다. 스님들이 개발업자가 걸어온 법정싸움에 대응하는 한편 광덕산을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주력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광덕산의 개발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 지정은 천안시청에서는 받아들여졌고, 현재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천안/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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