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간사들이 8일 오전 전남 영암군 홍농읍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부실부품을 사용하는 원전 3, 4호기 정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빛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를 상징하는 십자가 160개로 묘지로 만들고 원전 위험을 알렸다. 그린피스는 한빛원전 3, 4호기의 경우 부실자재 인코넬(Inconel) 600을 원전 핵심설비인 증기발생기와 원자로헤드의 전열관으로 사용해 잦은 사고와 고장이 일어난다며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앞서 핵발전소 운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빌미 삼아 탈원전 정책을 흔들려는 친원전 세력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그 선봉에 선 일부 언론의 관련 보도는 정도가 지나친 느낌이다.
한 보수 언론은 9일 ‘감사원, 한수원 사장 등 핵심 10명 줄소환’이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다룬 기사에서 “감사관들은 (한수원이) 조기 폐쇄를 결정한 배경에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작용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이 대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운영사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라고 받아들인 이들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사실 감사원에서 조사하고 말 것도 없는 공지의 사실이다. 폐쇄 의결 당시 한수원 이사회에 올라온 부의안건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한수원은 이 자료에서 안건을 제출한 배경에 대해 “정부가 에너지전환로드맵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방침을 결정해, 공기업으로서 정부정책 이행을 위한 운영계획을 수립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요지는 한수원이 수명연장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개보수한 멀쩡한 원전을 경제성이 없다며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원전의 경제성은 향후 이용률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폐쇄를 의결한 이사회에는 계속 가동 이후 이용률을 80%, 60%, 40%로 잡은 세 가지 시나리오에서의 현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가 보고됐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중립적 수준의 이용률 60%에서 계산한 결과를 보면, 월성1호기를 2022년 11월까지 계속 가동할 경우 2018년 6월 즉시 정지시키는 것보다 손실 규모가 224억원 적다. 한수원은 이에 앞서 이용률을 85%로 잡아 계속 가동이 즉시 정지보다 3707억원 이득이라고 분석한 내부 검토용 보고서를 만든 바 있다.
계속 가동 뒤 이용률 전망치 60%와 85%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 전망이었을까? 폐쇄 결정 전년도인 2017년 월성1호기의 이용률은 40.6%에 불과했고, 이전 3년 간을 따져도 평균 57.5%로 60%를 넘지 못했다. 1호기보다 뒤에 지어진 월성2~4호기의 이전 3년간 평균 이용률도 79.9%에 머물렀다. 가동된 지 얼마 안 된 새 원전을 포함한 전체 원전의 평균 이용률이 2018년 65.9%, 지난해 70.6% 였던 점까지 고려하면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의 이용률을 60%로 잡은 것을 축소 조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한수원은 폐쇄를 의결한 이사회에 “계속 가동은 경제성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보고했던 것도 아니다. 당시 제출된 부의안건 자료와 당시 회의록을 보면 “계속 가동 시 경제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을 뿐이다. 계속 가동해도 이용률이 54.4%에 못 미치면 즉시 정지하는 것보다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과 규제환경 강화로 향후 이용률에 불확실성이 높은 것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같은 자료에는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이 경제성 이외에도 정부 정책과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 다양한 측면을 함께 검토해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도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이 마치 경제성이 폐쇄 사유의 전부인 양 몰아가는 것에는 경제성 문제를 탈원전 정책을 흔들 핵심 고리로 굳히려는 속내가 보인다.
월성1호기가 연장된 설계수명인 2022년 11월까지 계속 가동되기 위해서는 추가 공사도 필요했다. 2019년 6월까지 안전 설비를 추가하고 그에 따른 평가까지 완료해 사고관리계획서 요건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이 이야기하는 경제성에는 이런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경제성 평가의 범위를 따지기에 앞서 경제성만 있으면 원전은 폐쇄하면 안 되는 것인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다. 한수원과 같은 공기업은 사기업과 달리 모든 것을 항상 비용과 수익의 관점에서만 결정할 수만은 없는 영역에서 활동한다. 이런 영역에서는 경제성만이 유일한 판단의 근거일 수는 없다. 정부가 경제성과 무관하게 환경, 국민 보건, 안전 등 다른 가치를 우선 고려한 정책을 수립해 공기업을 통해 시행하는 사례는 많다. 보수 야당과 언론의 논리대로면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정책을 세운 공무원들과 그 정책에 협조한 경영진은 모두 감사원에 불려가야 한다.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의 경제성 평가에 초점을 맞춘 감사원 감사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지켜볼수록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국회의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여당이 야당의 탈원전 정책 흔들기 의도가 뻔한 감사 요구안에 동의해준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당시 여당의 산자위 간사였던 홍의락 전 의원은 “정부 쪽과 얘기해 좀 힘들겠지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합의했다”며 “그게 논란거리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사실 아무리 논란을 벌여도 이미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가 재가동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연장된 잔여 수명도 2년 반 뒤면 만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원전 세력들에게는 논란을 이어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 논란 과정에서 경제성이 탈원전의 주요 변수로 부각되는 것은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다시 이어질 노후 원전폐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사원 내부 움직임에 정통한 것으로 보이는 한 보수언론은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것을 두고 최재형 감사원장과 나머지 감사위원들 사이의 갈등설을 부각하기도 했다. 법조인 출신의 강직한 원장의 소신이 감사위원들에게 발목 잡혀 있다는 것이다. 감사위원들은 단지 현 정부 들어 임명된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정부 눈치나 보는 무소신한 사람들이 돼 버렸다. 단지 그런 이유로 감사위원들의 소신이 의심받아야 한다면, 최재형 감사원장과 이 신문의 논설주간과 원자력전문가가 서로 동서 사이라는 점을 누군가 의심의 눈초리로 봐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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