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7월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진정한 그린뉴딜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부를 규탄하며 청년들의 미래가 잿빛임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그린뉴딜에 온실가스 절반 감축과 탄소중립을 명시할 것과 석탄발전소 종료 및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얼마 전부터 ‘넷 제로(Net-Zero)’라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넷 제로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이 0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량과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흡수·제거되는 온실가스량이 같아진 상태여서 ‘탄소 중립’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내놓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보면,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가 넘지 않게 하려면 2050년경 넷 제로에 도달해야 합니다.
지난해부터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학생들의 집회·시위가 활발히 펼쳐지면서 국내에서도 비상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시민환경단체가 중심이 된 이런 목소리는 지난 9월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 의결로 이어졌습니다. 국회는 결의안에서 정부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아이피시시의 권고에 부합하게 상향하고, 유엔에 제출할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2050년 넷 제로’를 목표로 수립하라고 촉구했습니다.
‘2050년 넷 제로’는 이렇게 국회 결의안에까지 올랐지만, 정작 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경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내놓은 ‘세계 에너지 전망 2020’ 보고서를 보면 2050년 넷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할 과정을 일부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이에이는 이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30년까지 10년 동안 (각국 정부와 기업 개인 등이 내리는) 결정이 2050년까지 넷 제로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2050 넷 제로’를 위해 세계가 2030년까지 도착해야 할 지점을 제시했습니다. 아이이에이가 상세한 모델링을 통해 이런 경로도를 제시하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만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 넷 제로’는 우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앞으로 10년 후인 2030년까지 2010년 배출량의 45%로 줄어들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속도와 규모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지속가능발전(SDS) 시나리오에서 제시된 수준을 모두 넘어서는 광범위한 조처가 필요합니다.
2050년 넷 제로로 가려면 전 세계의 1차 에너지 수요는 2019년과 2030년 사이에 17%가 줄어, 세계 경제가 두 배로 커진 상태에서도 2006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돼야 합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전기화 확대와 효율성 향상, 행동변화가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전력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과 2030년 사이에 약 60% 줄어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 전력 공급에서 수력까지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이 같은 기간 27%에서 60%로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간 신규 태양광발전시설 확대 규모는 지난해 110GW에서 2030년 약 500GW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탄소포집·저장·이용(CCUS) 설비를 갖추지 않는 석탄발전소 발전 비중도 같은 기간 37%에서 6분의 1인 6%까지 줄어들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 전력부문 신규 투자액이 2019년 7600억달러에서 2030년 2조2000억달러로 3배 가까이 늘고, 그것의 3분의 1 이상이 전력망 확장과 현대화에 투입돼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이에이의 모델링은 에너지 부문 이외의 다른 부문에서도 매우 도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모의 결과를 내놨습니다. 건물 부문을 보면 선진국에서는 전체 건물의 절반가량이 2030년까지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리모델링돼야 하고, 나머지 나라들에서도 전체 건물의 3분의 1에 같은 조처가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해 판매된 승용차의 2.5%에 그쳤던 전기차 비중은 2030년까지 20배인 50% 이상 늘고, 이를 위해 전 세계 배터리 제조능력은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2050 넷 제로’를 위해서는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기존 인프라의 배출량 감축에 더해 개개인의 행동변화가 필수적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아이이에이 보고서는 행동변화를 통해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가장 큰 부문으로 운송을 꼽았습니다. 비행시간이 1시간이 안 되는 거리 사이의 이동은 항공기 대신 저탄소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3km 미만은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도로 교통 속도를 시속 7km가량 늦추는 것 등의 행동변화가 즉시 완전하게 실행된다면 운송 부문 이산화탄소 배출이 20% 이상 줄어드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이에이 보고서가 ‘2050 넷 제로’의 경로로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60%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3020 계획’ 목표치의 약 3배에 이릅니다. 지난해 수력을 포함한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6.5%(수력 1.1%)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아이이에이가 이번 분석에 처음 적용했다는 향후 10년간의 ‘2050 넷 제로’ 경로 모델링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 총량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6위인 한국에는 보고서에 제시된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신속한 변화가 요구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용기와 결단은 정부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