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욕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목욕할 때 물이 욕조 밖으로 튀지 않도록 샤워 커튼을 사용한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 샤워 커튼이 드물게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비누를 써서 손이나 몸을 씻으면 피부에 있는 세균이 거품과 함께 떨어져 나간다. 이 비누 거품에는 세균 뿐 아니라 우리 몸의 유기물까지 뒤섞여 있다. 비누 거품의 대부분은 목욕물과 함께 하수구로 나가지만, 일부는 샤워 커튼에 튀어 남는다. 특히 비닐로 된 샤워 커튼은 잘 접히기 때문에, 만약 비누 거품이 접힌 부분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2004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은 일반 가정에서 쓰는 샤워 커튼을 모아 조사했다. 결과 샤워 커튼에는 각종 세균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샤워 커튼 표면의 ‘비누 때’에는 비누 성분과 세균, 그리고 세균 분비물이 얇고 딱딱한 막을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이 세균 막이 목욕 중간에 샤워기의 강한 물살과 닿으면서 떨어져 나와 공기 중에 떠돌 수 있다. 샤워하는 사람의 호흡기나 상처 부위를 통해 인체에 침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행스럽게 이런 세균들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질병을 일으킬 만큼 위협적이지 않다. 반면 당뇨, 암과 같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비누 때에서 발견된 세균 가운데에는 병원성 세균이 80%에 달했다. 폐렴이나 장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콜로라도 대학의 연구팀은 원인이 분명치 않은 감염성 질환이나 만성 질환이 불결한 샤워 커튼에서 비롯될 수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다면 당장 샤워 커튼을 걷어내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샤워 커튼을 쓰면 청결한 목욕탕을 유지하고 욕실 바닥이 젖지 않아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대신 샤워 커튼의 청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커튼을 자주 씻고, 접힌 부분은 펴 주며,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한다. 비닐 대신 물에 젖지 않는 소재로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병원이나 노인들이 사는 시설에서는 1회용 샤워 커튼을 사용하거나 샤워 커튼 대신 유리로 된 샤워 부스를 설치해야 한다. 유리표면은 비닐 커튼에 비해 세균 번식이 힘들고, 청소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환경보건학 박사·환경과건강 대표(www.enh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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