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시아보 (연합)
한국판 ‘시아보’ ‘간접살인’ 논쟁 부를 가능성
안명옥 의원등 ‘보라매병원사건’뒤 의사여론 수렴해 ‘의료법 개정안’ 발의
안명옥 의원등 ‘보라매병원사건’뒤 의사여론 수렴해 ‘의료법 개정안’ 발의
앞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 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나?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의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24일 동료 의원 9명과 함께 ‘불합리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환자 보호자쪽의 치료 중단 요구가 있거나 의학적 기준에 따른 치료 중단 필요성이 판단되는 경우에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심의와 결정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의료계의 요청을 수렴해 발의되었지만, 연명 치료 중단 여부를 두고 ‘생명윤리’에 대한 일대 논쟁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안명옥 의원은 “환자가 의학적으로 회생 불가능함에도, 특수 기계장치 등을 통해 억지로 연명시키는 것은 환자 본인에게나 가족에게 고통이며 사회적 부담도 크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환자 가족의 경제적 사정으로 연명 치료를 위해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응급의료기금의 재원을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에는 의사 출신인 안명옥·신상진 의원을 비롯해 배일도 윤건영 의원 등이 함께 발의에 참여했다. 안명옥 의원실의 오도성 보좌관은 발의안에 대해 “의료계의 요구를 수렴한 것으로 국회 보건복지위 의견도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며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이 법안 발의는 2004년 8월 대법원이 “환자가 퇴원할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킨 의사들이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계기가 되었다. ‘보라매병원’사건으로 불리는 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당시 의료계는 “의료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의사에게 과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
환자 보호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심사와 결정을 통해 ‘불합리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기계적 장치에 의해 연명하고 있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안락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생명 유지장치’ 제거 타당성에 대한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3월 ‘식물인간’ 시아보 생명유지장치 제거 놓고 미국 대논란
2005년 3월 미국에서는 15년째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으로 생명이 유지되어온 테리 시아보(당시 41살)의 영양공급 튜브 제거를 놓고 일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시아보의 남편은 아내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생명 유지장치 제거를 요구했으나, 시아보의 부모는 해줄 것을 요구한 부모들은 “시아보가 눈을 깜박이고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등 분명히 살아 있는 상태”라며 급식튜브 제거에 반대했다. 7년간에 걸쳐 30여건의 판결을 거듭한 이 문제는 미국 상하원과 각급 법원에서 일대 논쟁을 불러오며 결국 급식튜브 제거가 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로 결론지어져 시아보는 급식장치 제거 13일 만에 숨졌다.
그러나 로마가톨릭 교황청은 시아보의 죽음을 부른 미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누구도 인간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비판하며 시아보의 생명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회생 불가능’의 기준, ‘가족들의 의견 엇갈릴 경우’, ‘보험재정 건전화’ 논란거리
환자 보호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심사와 결정을 통해 ‘회생이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조처를 중단하도록 할 수 있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환자 보호자의 과중한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의 운영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법안이나 필연적으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학 수준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경우에 대한 의료진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회생이 불가능한 경우로 판단되었을 때도 연명 치료의 지속 여부를 두고 시아보의 경우처럼 보호자인 가족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학적 기준에 따른 치료 중단 필요성이 판단되면 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심사와 결정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은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한 ‘간접살인’ 논란을 부를 여지가 있다. 여기에 시아보의 경우에서처럼 생명 유지장치 제거를 통한 사망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가톨릭계의 의견도 하나의 변수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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