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송 어땠나
개인들만 제기…4건 모두 패소
질병과 관련성 입증 어려운 탓
흡연-암 관련성
건보 “암 발생 2.9∼6.5배 높여…
관련질환 한해 의료비 1조7천억”
담배협회 “흡연자 습관·직업 등
환경 따라 달라져 인과관계 모호”
건강피해 책임 누가 지나
시민단체 “담배, 마약같은 중독물질”
담배회사 “흡연자들 자유의지 선택”
개인들만 제기…4건 모두 패소
질병과 관련성 입증 어려운 탓
흡연-암 관련성
건보 “암 발생 2.9∼6.5배 높여…
관련질환 한해 의료비 1조7천억”
담배협회 “흡연자 습관·직업 등
환경 따라 달라져 인과관계 모호”
건강피해 책임 누가 지나
시민단체 “담배, 마약같은 중독물질”
담배회사 “흡연자들 자유의지 선택”
국내 처음으로 공공기관과 담배회사 사이의 ‘담배 전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달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이 이사회를 열어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로 의결하면서다. 이전에 흡연자 개인이 낸 소송들에서는 흡연과 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 담배회사가 승리했지만, 건보는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담배회사들은 ‘흡연은 흡연자의 자유 의지에 달린 문제인데 왜 담배회사가 책임을 지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담배 소송의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왜 건보가 담배소송 내나 흡연으로 인한 질병이 발생하면 환자의 진료비와 치료비의 상당 부분을 급여로 지출하는 건보가 원인 제공자인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이다. 건보는 우선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폐암과 후두암을 들어 케이티앤지(KT&G)와 외국계 담배회사를 상대로 130억∼33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로 했다. 이르면 이달 안에 소송을 내되, 소송 결과를 본 뒤 다른 질환에 대한 소송 등으로 넓혀나갈 계획이다.
건보는 지난해 8월 흡연 때문에 지출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한해 약 1조7000억원(2011년 기준)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근거로 삼은 지선하 연세대 교수팀의 ‘흡연 관련 진료비 분석 연구’는 1992~1995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및 이들의 피부양자 가운데 건강보험 건강검진에 참여한 130만명을 대상으로 2011년 12월까지 길게는 19년 동안 추적조사한 연구결과다.
담배회사들을 대변하는 한국담배협회는 이 조사가 일부 공무원과 교직원만을 대상으로 해 표본의 대표성이 없는데다, 식사습관이나 다른 질병, 공해 노출 등 다른 질병 위험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 교수팀과 공단은 대상자가 100만명이 넘는 연구는 역대 아시아 최대 규모로, 표본 수가 많은데다 추적조사 기간도 매우 길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고 반박한다. 이 연구결과에서 흡연 관련 질병은 폐암이나 후두암 등 35개 질환에 이르며, 이로 인해 드는 비용은 한해 1조7000억원의 직접 의료비뿐만 아니라 치료를 받기 위해 쓴 시간이나 노동력 손실, 교통비 등을 모두 고려하면 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주요 쟁점 담배회사는 지금까지 흡연자들이 자유의지로 담배를 피웠는데 뒤늦게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억울하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흡연 피해 소송에서도 재판부가 이를 인정해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담배는 제조 과정에서의 결함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흡연이 폐암이나 후두암 등 각종 암과 폐질환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고 이를 잘 아는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고 싶어하지만 담배의 고도의 중독성 때문에 금연에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은 “담배 중독, 다시 말해 담배를 피움으로써 흡수되는 니코틴 중독은 대마초 등 마약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게다가 담배회사는 다른 첨가물을 넣어서 담배 중독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담배의 해로움은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흡연은 국제질병분류에서도 ‘담배로 인한 정신적·행동적 장애’로 분류되며, 미국정신과학회도 니코틴(담배)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담배의 중독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로 제시된다.
또 담배협회는 이미 담뱃값에 포함된 세금에 건강증진기금 명목이 들어 있어 해마다 1조5000억원가량을 건보에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흡연 관련 질병으로 지출되는 의료비 1조7000억원과 거의 맞먹는 액수인데 또 소송을 내는 것은 일종의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억지주장이라는 것이 건보와 금연운동 단체의 입장이다. 담배 한갑당 354원의 건강증진기금은 고스란히 흡연자가 담배를 살 때 내는 것인데 이를 마치 담배회사가 내는 것처럼 속이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을 담당하는 안선영 변호사는 “건강증진기금은 흡연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담배회사가 대신 걷어 납부하는 것인데도, 담배회사가 이를 내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담배 소비자가 건강증진기금을 내듯이 담배회사도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일으키는 당사자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도 담배회사가 이길까? 그동안 국내에서 벌어진 담배 소송은 모두 4건인데,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담배회사가 전부 이겼다. 현재 대법원에 2건, 고등법원에 1건이 계류 중이다. 나머지 1건은 원고로 나선 흡연자가 항소를 포기했다.
담배 소송에서 원고가 이기기 어려운 것은 흡연 관련 질환이 반드시 담배 때문에 발병했다는 관련성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탓이다. 담배협회는 “소송을 제기한 쪽에서 폐암이나 후두암 등이 흡연 관련 질환이라고 주장했으나, 판결 내용을 보면 흡연자의 생활 습관, 직업, 식사 습관, 가정 환경, 유전적 요인 등에 따라 질병 발생이 달라지는 등 인과관계가 모호하다”고 밝혔다. 담배협회는 이번 소송도 이길 것으로 자신하면서, 건보가 소송 비용만 쓰게 돼 결국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낭비할 것이라고 되레 공격한다.
건보도 인과관계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충분한 인적·물적 자원을 갖춘 정부나 공공기관의 승소 가능성은 미국 등에서 이미 증명된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어 건보 쪽이 광범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법정에서 흡연 피해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미 정부나 건보 통계 자료에서도 2012년 기준 한해 5만8000여명이 흡연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고, 흡연은 각종 암의 발병 가능성을 2.9~6.5배까지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설명이다.
글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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