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일 이틀간 ‘유엔에이즈’ 관계자들이 국내 에이즈 감염자들이 차별받는 실상을 파악하려고 한국을 다녀간 사실이 24일 뒤늦게 확인됐다. 이들은 한국의 에이즈 감염자들이 겪는 심각한 차별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관련 네트워크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일 스티븐 크라우스 유엔에이즈 아시아태평양 지역지원팀장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가족, 에이즈 인권단체 활동가, 전문가들을 만나 국내 유일한 에이즈 전문 요양병원에 있다가 뿔뿔이 흩어진 감염자들의 실상을 들었다”고 이날 밝혔다.
2009년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 전문 요양병원으로 위탁한 경기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은 지난해 12월 위탁이 해지됐다. 당시 입원해 있던 46명의 환자는 여러 일반 요양병원에 입원을 문의했으나 거절당했고 국립중앙의료원에 12명, 경찰병원에 11명이 전원됐다. 갈 곳이 없어 위탁 해지된 요양병원에 남아있는 환자도 18명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들한테 간병비를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거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았다.
20일 유엔에이즈 관계자들과 간담회에 참석한 이훈재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에이즈 감염자는 관리만 잘 받으면 전염 위험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요양병원은 전염 질환이 있는 환자를 입원시키지 않도록 한 의료법 시행규칙 조항을 내세워 일반 요양병원들이 에이즈 감염자 입원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법적 조항의 전염 질환에 에이즈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했지만 요양병원들은 공공연하게 에이즈 감염자들의 입원을 거절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의료법에 이런 허점이 있으면 복지부가 개정을 하거나 요양병원을 지도해야 하는데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며 “유엔에이즈 쪽에서도 이런 얘기를 듣고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HIV·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플러스’의 권미란 활동가도 “에이즈 전문 요양병원이 위탁 해지된 뒤 감염자들이 갈 곳 등과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어떠한 장기적인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에이즈 감염자들의 현실을 접한 스티븐 크라우스 팀장은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지 몰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서도 이런 사정을 전하고 국제적인 에이즈 네트워크에도 한국의 실상을 알리겠다”고 권 활동가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대부분의 요양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이 기피한다며 에이즈 환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다음주부터 전국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과 설득을 통해 에이즈 감염자들이 일반 환자들과 다름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입원을 거부하는 요양병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는 난색을 표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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