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금지’ 시행 넉달만에 뒤집어
“환자 신원파악 우려” 병원 요구 수용
시민단체 “병원 편의 봐주기” 비판
“환자 신원파악 우려” 병원 요구 수용
시민단체 “병원 편의 봐주기” 비판
정부가 전화나 인터넷으로 진료 예약을 받는 병원의 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한 지 넉달도 되지 않아, 이를 뒤집었다. 원칙 없는 ‘오락가락 행정’이자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보다 병원 편의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는 28일 “병원이 환자들의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진료·검사 목적으로 예약을 받을 때엔 주민번호 수집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와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는 지난 8월 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자 ‘의료기관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정해 병원 예약접수 때 주민번호를 수집하지 말고 이름·생년월일·전화번호·주소만을 파악하도록 했다. 이에 대한병원협회(병협)가 “주민번호가 없으면 환자 신원 파악이 부정확해질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지만, 복지부는 “원무과에서 한 차례 더 환자 신원을 확인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유로 주민번호 수집 금지 방침을 고수했다. 대신 여섯달의 계도 기간을 뒀다.
그러나 정부는 계도 기간을 두달 남겨 놓은 이날 ‘환자 안전’ 등을 이유로 병원 쪽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화번호가 자주 바뀌는 사람이나 주소를 정확히 모르는 노인 등이 있어 진료 예약 과정 등에서 환자를 구별하는 데 혼선이 많았다”고 가이드라인 변경 이유를 밝혔다. 정부 지침에 맞춰 이미 돈을 투자해 예약 시스템을 바꾼 일부 병원들만 손해를 보게 된 꼴이다.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법 취지에 반하는 조처라며 반발했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2012년 응급실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에 상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고시했다가 의료계가 반발하자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정부가 환자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생색을 내다가 이해 당사자들이 반발하면 슬그머니 취소하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정책 목표가 병원 행정 편의 봐주기가 아니라면 병원만 주민번호 수집 금지의 예외로 둘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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