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병원 안 감염 문제로 현장 관리감독을 위해 파견된 남형기 안전환경정책관 등 ‘메르스 삼성서울병원 즉각대응팀’이 15일 오후 일부 폐쇄 조치를 받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본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총체적 난국 빠진 역학조사…확산 차단 ‘속수무책’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추가 전파를 막기 위한 역학조사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초기 방역망에 구멍이 뚫리면서 격리 대상에서 제외됐던 환자들이 잇따라 발생하는데다 메르스 사태가 전국화·장기화하면서 조사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을 추적하기엔 전문 인력이 너무 모자라는 탓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민간 전문가까지 투입했으나 메르스 확산의 길목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평소 감염병 예방에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국가 방역체계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15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150명까지 늘어난 가운데, 메르스 현장 역학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ㄱ 조사관(공중보건의)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온 국민이 투입되지 않는 이상 어느 집단도 (역학조사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역학조사가 실패했음을 에둘러 말한 셈이다.
숙련도 낮은 조사관
34명 중 32명이 군복무 공보의
2년 교육 수료자는 달랑 6명뿐 업무량 이미 포화상태
격리대상서 빠졌던 환자 속출
길게는 10여일 행적 좇아야 해
“삼성병원 CCTV도 다 확인못해” 민간전문가 투입했지만…
민간조사관이 ‘추적’ 돕기엔 한계
“코호트 격리 아닌 이상 누락 발생” 앞서 메르스에 감염된 다수의 환자들이 아예 격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던 건 사실상 부실한 역학조사에서 비롯됐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이송요원으로 일하다 감염된 137번 환자(55)가 대표적이다. 병원 쪽과 정부는 이 환자가 14번 환자(35)에 노출돼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뒤 무려 9일 동안 격리는커녕 14번 환자와의 접촉 여부도 파악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이날 “137번 환자에 대한 자체 역학조사 결과, 6월5일 보라매병원 응급실에 2시간가량 머문 사실을 확인해 의료진 등 직원 12명을 자택격리했고 68명을 능동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이 환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동선을 확인한 결과로, 정부의 역학조사에서는 빠져 있던 내용이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은 “서울엔 다른 지역보다 환자가 많은데도 담당 역학조사관은 똑같이 1명이다 보니 조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역학조사는 ‘감염 원인과 경로’를 밝히는 작업과 추가 전파를 막는 방역으로 구성된다. 이미 병의 원인은 드러난 만큼 역학조사관들은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환자의 의무기록, 폐회로텔레비전(CCTV), 면접조사 등을 통해 동선을 좇는다. 워낙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평소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활용하지 않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 방문기록도 들여다보고 있다. 조사관들의 업무량은 이미 포화상태다. ㄱ 조사관은 “환자가 20명 수준일 때까진 조사가 가능했는데 100명이 넘으면서 추적·관리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열흘 동안 70여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은 폐회로텔레비전조차 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학조사를 돕고 있는 이관 동국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삼성서울병원처럼 드나드는 인원이 많을 땐 코호트 격리(집단을 통째로 격리하는 방식)를 하지 않는 이상 누락되는 인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전했다.
조사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데 견줘 역학조사 인력은 ‘기근’에 가깝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해마다 80여명을 뽑아 역학조사 전문요원으로 키운다. 한국도 법적으론 중앙정부에서 30명, 각 시·도에서 20명씩 370명의 역학조사관을 둘 수 있지만 현재 투입된 조사관은 질병관리본부 소속 14명을 포함해 34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정식 공무원인 2명의 보건연구관을 제외한 32명이 군복무 중인 공중보건의(공보의)다. 공보의들이 조사관으로 제구실을 하려면 2년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지만 현재 조사관 가운데 3년차 공보의는 6명 정도에 불과하다. 백동원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장은 “숙련되지 않은 공보의를 현장에 내몰고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게 과연 맞느냐”고 짚었다.
격리관찰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환자까지 잇따라 발생하면서 조사관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추적할 행적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ㄱ 조사관은 “길게는 10여일 정도의 행적을 좇아야 하는데다 일부 환자들은 병원을 몇 군데씩 들르기도 해, 한 환자에 역학조사관이 4명씩 달려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고 위험군’을 설정하고 거기부터 관리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이날 뒤늦게 “예방의학회와 협조를 통해 예방의학 전공의, 간호사, 보건학 전공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역학조사반을 시·도에 배치한다”고 밝혔지만 선제적 방어라기보단 뒷수습에 급급한 형국이다. 대책본부는 이날 “급한 대로 전공의들한테도 기존 역학조사관과 똑같은 권한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수련 과정’ 신분인 이들한테 조사관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게 됐다.
조사관들의 업무가 과부하된 상황에서 역학조사 결과를 날마다 ‘중계’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초 자료를 파악하는 데도 하루가 꼬박 걸리고 뒤늦게 동선이 드러나는 일도 잦아 곧바로 확진자의 감염 경로를 정확하게 알리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임인택 엄지원 기자 suji@hani.co.kr
34명 중 32명이 군복무 공보의
2년 교육 수료자는 달랑 6명뿐 업무량 이미 포화상태
격리대상서 빠졌던 환자 속출
길게는 10여일 행적 좇아야 해
“삼성병원 CCTV도 다 확인못해” 민간전문가 투입했지만…
민간조사관이 ‘추적’ 돕기엔 한계
“코호트 격리 아닌 이상 누락 발생” 앞서 메르스에 감염된 다수의 환자들이 아예 격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던 건 사실상 부실한 역학조사에서 비롯됐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이송요원으로 일하다 감염된 137번 환자(55)가 대표적이다. 병원 쪽과 정부는 이 환자가 14번 환자(35)에 노출돼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뒤 무려 9일 동안 격리는커녕 14번 환자와의 접촉 여부도 파악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이날 “137번 환자에 대한 자체 역학조사 결과, 6월5일 보라매병원 응급실에 2시간가량 머문 사실을 확인해 의료진 등 직원 12명을 자택격리했고 68명을 능동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이 환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동선을 확인한 결과로, 정부의 역학조사에서는 빠져 있던 내용이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은 “서울엔 다른 지역보다 환자가 많은데도 담당 역학조사관은 똑같이 1명이다 보니 조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역학조사는 ‘감염 원인과 경로’를 밝히는 작업과 추가 전파를 막는 방역으로 구성된다. 이미 병의 원인은 드러난 만큼 역학조사관들은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환자의 의무기록, 폐회로텔레비전(CCTV), 면접조사 등을 통해 동선을 좇는다. 워낙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평소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활용하지 않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 방문기록도 들여다보고 있다. 조사관들의 업무량은 이미 포화상태다. ㄱ 조사관은 “환자가 20명 수준일 때까진 조사가 가능했는데 100명이 넘으면서 추적·관리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열흘 동안 70여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은 폐회로텔레비전조차 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학조사를 돕고 있는 이관 동국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삼성서울병원처럼 드나드는 인원이 많을 땐 코호트 격리(집단을 통째로 격리하는 방식)를 하지 않는 이상 누락되는 인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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