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확진자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지털 맵 ‘코로나 맵’.
“50대 남자가 왜 강남 성형외과를 두 번이나 갔나?” “5번째 확진자 방문 럭키마트는 저희 가게 아니고 다른 곳에 있는 마트입니다.”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첫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나온 이후, 보건당국(중앙방역대책본부)은 날마다 확진자가 증상 발현 이후 이동한 경로를 공개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증상이 나타나기 전날부터 동선을 전부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에, 개별 환자의 이동 경로는 좀 더 상세히 밝혀질 전망이다. 이런 조처는 같은 공간에 있었던 접촉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으로 시행되는 것인데, 사생활 비난이나 부정확한 상호명 공개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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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동선 공개, 왜? 방역당국이 공개하는 확진자의 동선 정보에는 관람한 영화와 좌석 위치, 열차 출발 시각 등의 자세한 정보가 적혀 있다. 고스란히 환자 사생활이기도 한 정보를 밝히는 이유에 대해 정은경 중대본부장은 4일 브리핑에서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노출 가능성을 알려 자신의 증상 발생 여부를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의심증상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신고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대폭 강화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조처이기도 하다. 법 34조의2는 “국민의 건강에 위해가 되는 감염병 확산 시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 이동 수단 등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를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메르스 사태 초기 질병관리본부는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아 ‘병원 내 감염’ 사태를 악화시킨 잘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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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바꾼 ‘한국형’ 역학조사 환자 확진이 이뤄진 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부가 ‘분 단위’까지 확진자의 세세한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높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율 외에도 국민 대다수가 신용(체크)카드와 이동전화를 이용하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덕이다. 또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예방법에 확진자 또는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해 시시티브이, 카드 명세 내용 등의 정보 요청 권한 등을 정부에 부여했다.
신종 코로나가 본격 확산한 지난달 31일부터 여신금융협회는 질병관리본부와 비상연락망 체제를 만들고 24시간 대응하고 있다. 확진자가 나오면, 질본은 여신협회에 확진자의 개인정보와 카드 사용 내용 등을 요청하고 카드사로부터 수시간 안에 정보를 받게 된다. 이동통신 3사도 경찰청을 통해 요청을 받으면 질본에 확진자의 위치정보 내용을 전송한다. 한 이통사 담당자는 “위치정보를 이용하면 확진자의 전체 이동 경로는 물론 5분 이상 머물렀던 장소 등을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카드를 많이 쓰고 시시티브이가 밀집된 ‘한국적 특성’이 반영된 역학조사”라며 “특히 카드 사용 정보를 활용한 역학조사는 외국에서도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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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정확한 정보 공유 중요 상세한 동선 공개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다. 지난달 26일 확진된 3번째 환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서울 강남 등을 거친 동선이 공개된 뒤 사생활과 관련한 일종의 ‘2차 피해’가 생기기도 했다. “50대 남자가 왜 강남 성형외과를 두 번이나 방문했느냐”며 동선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설’이 사실처럼 정보지 형태로 떠돌기도 했다. 5번째 확진자(한국인 남성·33)에게도 “아직도 점집 다니는 사람이 다 있느냐”며 ‘비아냥’ 섞인 댓글이 달렸다. 박혜경 중대본 총괄팀장은 “확진자 동선 공개는 예방 차원에서 알리는 만큼 환자의 동선에 대한 과잉 해석은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확진자가 방문한 상호가 잘못 알려지면서 업주들이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5번째 확진자가 방문한 서울 성북구 ‘럭키마트’는 ‘럭키후레쉬마트’인 것으로 뒤늦게 정정됐다. 중대본이 카드 전표에 찍힌 상호를 기준으로 발표한 것인데, 성북구에 있는 럭키마트만 3곳이었다. 정은경 본부장은 “명칭을 잘못 공개한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상호명과 세부 지역을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해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재갑 교수는 “동선을 당일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로 초기 혼선을 낳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