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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밥차에 간신히 ‘하프타임’…출퇴근 잊은 방역 최전선 질병관리본부

등록 2020-03-02 05:01수정 2020-03-02 09:25

자정 넘어 퇴근…이른 아침 출근
‘2시의 알림이’ 정은경 본부장
단발머리 짧게 자른 ‘전투 모드’
전문성 바탕 브리핑 신뢰 더하며
직원 100여명과 ‘준전시’ 강행군
#고마워요 #힘내요
SNS 등 국민적 응원·걱정 잇고
전국 각지서 선물·관심 늘어도
“더 잘해야 한다”며 위기 대처 몰두
만화가 이정헌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힘내라 대한민국’ 그림. 이 작가는 시민들이 흰 종이에 자신이나 가족을 그려 보내주면, 이 그림과 합쳐 하나의 응원 액자를 만든 뒤 질병관리본부에 선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정헌 작가 제공
만화가 이정헌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힘내라 대한민국’ 그림. 이 작가는 시민들이 흰 종이에 자신이나 가족을 그려 보내주면, 이 그림과 합쳐 하나의 응원 액자를 만든 뒤 질병관리본부에 선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정헌 작가 제공

오후 2시 노란 민방위복을 입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이 어김없이 브리핑실 마이크 앞에 섰다. 지난 27일로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1월20일)한 지 39일째, 다른 일정 때문에 박혜경 방대본 총괄팀장이 대신했던 딱 하루(1월29일)를 제외하면, 기자와 국민들에게 그날그날의 환자 발생 현황을 설명하고 예방수칙 준수를 호소하는 ‘2시의 알림이’는 늘 정은경 본부장이었다.

주말도 없이 충북 오송시 질병관리본부(질본)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현황을 전하는 정은경 본부장은 방역 컨트롤타워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나날이 핼쑥해지는 모습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질본이 코로나19 확산을 잘 막아왔는데,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갑자기 환자가 폭증하면서) 좀 허탈하지 않을까. 그래도 계속 힘을 냈으면 한다”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안쓰러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브리핑 질의응답 시간엔 으레 까칠하기 마련인 기자들조차 “먼저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거나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느냐”는 따뜻한 걱정의 말을 건넬 정도다.

2019년 3월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긴급상황실에서 감염병 위기관리 훈련 중인 모습. 질병관리본부 제공
2019년 3월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긴급상황실에서 감염병 위기관리 훈련 중인 모습. 질병관리본부 제공

그럴 법도 한 것이,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생한 뒤 정 본부장은 매일 새벽 6시께 출근해 자정을 넘겨 퇴근한다. 최근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겠다”며 단발이었던 머리를 옷깃에 닿지 않을 정도의 길이로 짧게 잘랐다. 그렇게 ‘전투 모드’로 온종일 다른 부처, 검역소 등 관련 기관과 수차례 회의를 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영상회의도 한다. 하루에 한시간여 브리핑도 그의 몫이었다. 그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언론의 개별적인 취재 요청도 쏟아지지만, 일일이 응할 시간도 없다. 지난 27일에도 정 본부장의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 취재진과 따로 대화할 시간은 브리핑실 건물과 본부 건물을 잇는 통로로 이동하는 동안인 30여초에 불과했다. 이날 이후 정은경 본부장은 사흘째 브리핑 자리를 비우고 권준욱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이 대신 진행했다. 정 본부장의 건강이 악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권 부본부장은 “다른 일정 등을 고려해 정 본부장과 번갈아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고 28일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질본 직원 100여명은 오송 보건의료행정타운 16동 긴급상황센터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3월 완공된 긴급상황센터 내 긴급상황실은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24시간 운영된다. 정 본부장도 긴급상황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질본 직원들은 ‘준전시' 상태로 업무 중이다. 27일 저녁 6시30분께에도 긴급상황센터 1층에서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식판에 밥차로 배달된 음식을 담으며 하루 ‘후반전’에 대비했다. 출퇴근을 하지 않고 건물 안에서 먹고 씻고 자는 직원들도 있다. 휴직 중이던 한 질본 공무원은 다른 동료들이 안타까워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기도 했고, 언론 취재 업무와 브리핑을 지원하는 위기소통담당관은 이달 중순 빙부상이 있었는데도 발인 다음날 바로 복귀했다.

한성욱 작가(@doubleokey)가 그린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한성욱 작가 제공
한성욱 작가(@doubleokey)가 그린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한성욱 작가 제공

질본은 각종 질병의 예방관리 대책을 수립·추진하는 곳이자, 감염병에 대응하는 곳이다. 감염병 방역의 책임을 맡은 기관이니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백명씩 늘고 있는 요즘 비판의 화살이 쏟아질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도리어 시민들은 질본이 방역 최전선에 있다며 응원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고마워요—질병관리본부, #힘내요―질병관리본부가 인기를 끌고, 정은경 본부장을 일러스트로 그린 그림을 공유한다. 요즘 질본은 전국 각지에서 선물로 오는 꽃이나 직접 재배한 농작물 등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여론이다. 국제적 감염병 위기를 거치며 미숙했던 대응 능력과 대국민 소통 방식이 조금씩 단련되고 성숙해진 덕분이다. 조직도 커지고 위상도 격상됐다. 사스 이후 국립보건원에서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됐고, 메르스 이후엔 본부장 지위가 1급(차관보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긴급상황센터 신설과 위기소통담당관, 감염병진단관리과도 메르스를 계기로 새로 생겼다. 지난해 12월 기준 본부에만 289명이 근무 중이다.

정은경 본부장의 신뢰감 있는 브리핑도 질본의 호감도를 높이는 요소다. 특히 지난 14일 확진자가 사흘째 발생하지 않았을 때도 정 본부장은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점이 지금처럼 확진자가 폭증하는 시기에 오히려 정 본부장에 대한 신뢰감을 키웠다. 질본 관계자는 “국민적 응원이 크다는 점을 본부장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만, 직원들에게 ‘우리가 아직 잘하고 있지 못하다, 더 잘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2017년 7월 질본의 첫 여성 수장이 된 정 본부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5년부터 질본(당시 국립보건원)에 들어와 만성질환과장, 질병예방센터장, 긴급상황센터장 등을 거친 감염병 전문가다. 메르스 사태 때도 질병예방센터장으로서 장기간 대국민 브리핑을 하면서 위기대처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6년 지카바이러스 확산 때도 긴급상황센터장 자격으로 언론 앞에 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특히 감염병 브리핑은 의학적 지식이 없으면 설명하기 힘든 점이 있다”며 “정 본부장은 의사 출신인데다 수년간 브리핑 경험이 있어 대체할 만한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권준욱 부본부장도 의사 출신으로, 2015년 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을 맡았고 보건복지부 대변인 등을 지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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