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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극단적 선택’ 심리부검 해보니…4050 여성 ‘가족 스트레스’ 컸다

등록 2020-11-27 13:59수정 2020-11-28 02:31

중앙심리부검센터 ‘2020년 심리부검면담 결과보고회’
지난 5년 간 극단적 선택자 심리부검 결과
40대와 50대 여성에서 눈에 띄는 성별 차이 나타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

40대 여성 ㄱ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때리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가정폭력 피해 속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집을 나와 편의점, 주방 보조 등의 일을 전전하다 자신보다 10살 많은 남성을 만나 임신했지만, 남편이 외도를 일삼아 결혼 생활은 8년 만에 끝났다. 이혼 뒤 안정적인 일자리는 얻기 어려웠고, 남편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겨우 마트 계산원 일을 시작했으나 생활고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우울감과 불면으로 주 4∼5일 술을 마시자 피로가 누적됐고 일터에서 실수가 잦아졌다. 실직한 뒤 고립된 채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던 ㄱ씨는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2.

50대 여성 ㄴ씨의 남편은 결혼 초부터 술에 취하면 폭력적·공격적 행동을 보였다가 술에서 깨면 용서를 비는 일이 반복됐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ㄴ씨는 갱년기 우울 증상과 겹쳐 여러 병원에 다녔으나 뚜렷한 의사 소견을 듣지 못했다. 결국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자녀들과의 갈등이 생기면서 관계마저 소원해졌다. 이후 고립된 생활을 하던 ㄴ씨는 결국 쓸쓸히 숨진 채 발견됐다.

40~50대 여성들이 가족 스트레스와 대인관계,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7일 ‘2020년 심리부검면담 결과보고회’를 통해 최근 5년 동안의 심리부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566명의 심리부검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심리부검은 사망자가 남긴 기록이나 유족의 진술 등을 통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추정하고 검증하는 조사 방법이다.

관련한 주요 스트레스 요인을 연령대별로 분석해보면, 상대적으로 20대는 연애 관계, 30대는 직업, 40대는 경제, 50대는 음주·도박 등 물질 및 중독 장애, 60대는 배우자 관계, 70대는 신체질환 등과 관련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보고서는 이 가운데 남성은 성별을 나누기 이전과 이후 스트레스 요인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여성의 경우 40대와 50대에서 특히 성별 구분 전 주요 스트레스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40대 여성은 40대 남성과 달리 대인관계 스트레스와의 관련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 세대 여성들은 성인기 이전에 주 양육자로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방임 피해를 겪은 뒤 성인기에도 학교·직장 등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 과정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경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가정불화로 인한 극단적 선택 충동은 여성이 남성에 견줘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위기자의 주변인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고 위험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줘 적절한 자원을 얻도록 돕는 캐나다 퀘벡주의 샘(SAM·Suicidal Action Montreal)이 고안한 프로그램 등이 예방대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50대 여성은 같은 세대를 지배하는 물질·중독 장애와는 관련성이 낮은 대신, 가족 관련 스트레스와 우울장애 관련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 세대 여성들은 배우자의 음주와 폭력, 외도 등으로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우울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갱년기 증상과 맞물려 정신건강 문제가 두드러졌고, 이로 인해 직장 관계에서나 가족 간의 갈등이 생기거나 악화했으며, 여기에 생활상 어려움이 겹쳐 위기 상황으로 이어졌다. 보고서는 “50대 여성의 경우 신체질환과 갱년기 증상으로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 지역 내 병·의원과의 업무 협약을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는 환자 중 우울 등을 호소하는 고위험군을 발굴해 전문기관에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5개년 누적 자살사망자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 중앙심리부검센터 제공.
5개년 누적 자살사망자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 중앙심리부검센터 제공.

아울러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직업과 경제, 가족과 건강 관련 스트레스 등 평균 3.8개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이 죽음에 순차·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1~2개의 요인으로 사망의 이유를 뭉뚱그려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566명 가운데 195명(34.5%)은 성인기 이전 성장 과정에서 아동학대나 폭행 등 부정적 사건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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