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송내동에 있는 요양병원인 가은병원에서 환자와 가족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면회를 하고 있다. 부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4일 오후 1시30분께 경기 부천시 송내동 가은병원. 고령층을 중심으로 310여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 이 요양병원에서 한 남성 면회객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로 보이는 환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면회객은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의 얼굴을 살피며 연신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병원에는 이날 여러 명의 외부 방문객들이 오갔다. 혹시나 열이 나진 않는지 병원 입구에서 방문자의 체온을 확인하고, 수기로 방문자 기록도 적게 했지만, 경비원이나 병원 원장, 간병인들은 방문객들의 방문에 크게 경계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난 2월 이전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은 마치 꿈만 같다.
가은병원에선 코로나19 3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21일부터 올해 1월22일까지 확진자가 38명 발생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하루 1천명대까지 치솟던 때였다. 병원은 2주에 한 차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하면서 대비했지만, 감염병의 틈입을 막을 순 없었다. 두 차례 유전자증폭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한 간병사가 일주일 뒤 진행한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 이 간병사를 최초 전파자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졌다.
간병사만이 아니었다. 입원환자로부터 시작된 집단감염도 있었다. 한 병원에서 최초 전파자가 다른 두 개의 집단감염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결국 이 병원의 5~6층 환자와 간병인, 종사자 등 100명가량은 지난해 12월23일부터 2월5일까지 45일 동안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되어야 했다. 격리자들은 배달 도시락과 생수를 먹으며, 페이스 실드와 가운을 착용하고 꼬박 24시간을 보냈다.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도 외부로 반출하지 못했다. 이 기간 병원에서 치료받던 병원 원장의 어머니도 코로나19에 감염돼 결국 숨졌다. 이 병원 원장인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예방이 안 되니까, 정말 무력했다. 진짜 악몽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송내동에 있는 요양병원인 가은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받고 있다. 부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월26일 시작된 백신 접종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그 어느 곳보다 바이러스 감염 원인과 침투 경로를 예상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가은병원은 첫날부터 종사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적극 장려했다. 그렇게 이날 현재까지 320명 정도 되는 병원 종사자 가운데 98%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300명이 넘는 환자까지 포함한 1차 접종률은 77%에 달한다. 2차 접종까지 마친 종사자와 환자 비율도 42.5%가량 된다. 외부 방문객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옅어진 이날의 분위기는 이 접종률이 준 자신감에서 비롯했다. 기 회장은 “우리 요양병원은 백신을 이미 맞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같이 자유로운 청정구역이 됐다”며 “2주 정도가 지나면 2차 접종을 끝낸 사람은 접촉 면회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접종을 마친 이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코호트 격리를 겪은 이 병원 간병사 이승현(66)씨는 “혹시라도 어르신들한테 피해가 갈까봐 코로나19 이후 식당에서 마음 놓고 외식도 못하고, 목욕탕 한 번을 못갔다”며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 이후 감염의 늪에서 벗어난 가은병원처럼, 코로나19 백신은 1차 접종만으로도 상당한 예방효과를 보이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 17일 기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은 뒤 2주가 경과한 60살 이상 고령층에서 감염 예방효과는 89.5%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1차 접종을 마친 고령층 가운데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사망한 사례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사망 예방효과가 100%인 것이다.
지난 4월과 이번 달 들어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병원·시설 등 네 곳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일 기준 확진자가 34명 발생한 대전 유성구 요양원은 백신 미접종자의 75%가 확진된 반면, 접종자 중에는 5.3%만 확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계양구 요양병원, 경기 성남시 요양병원, 전남 여수시 재활병원에서도 미접종자의 코로나19 발병률이 각각 11.3%, 12.4%, 13%였으나, 접종자의 발병률은 0.9%, 0.4%, 2.4%에 불과했다.
백신 접종으로 고령층의 감염 우려가 줄어든 만큼, 방역당국은 다음 달부터 요양병원‧시설의 접촉 면회를 재개할 예정이다. 요양병원‧시설의 입소자나 면회객 중 한쪽이 2차 접종을 완료하고 2주가 지났다면 접촉 면회가 가능해진다. 해당 시설의 1차 접종률이 75% 이상이라면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을 한 뒤 면회가 가능하지만, 접종률이 75% 미만이라면 면회객에게는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확인서가 필요하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송내동에 있는 요양병원인 가은병원에서 이 병원 원장인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역사회에 감염이 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려면 백신 밖에 탈출구가 없어요.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백신 무용론 얘기하는 사람들은 백신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모르는 거예요. 제 입장에선 백신이 조금만 일찍 왔으면 살릴 수 있는 생명도 있었는데, 싶은 거죠.” 기 회장이 마스크 너머로 열변을 토했다.
부천/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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