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낮 한 배달기사가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가운데, 플랫폼 사업자에게 ‘노동자성’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현재는 노동자가 스스로 “나는 노동자입니다”라는 사실을 법원에 입증해야 하지만,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사업자가 “저 사람은 노동자가 아닙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플랫폼 종사자법·이수진 의원안)을 발의했다고 16일 밝혔다.
앞서 지난 3월 같은 당
장철민 의원이 같은 이름의 법안(장철민 의원안)을 제출한 바 있지만, 두 법안은 차이가 있다. 두 법안은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관계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면 플랫폼 종사자법이 아니라 노동관계법을 우선 적용한다는 점에선 같으나, 이수진 의원안에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관계법률 적용을 주장하는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사업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장철민 의원안은 노동자성 판단과 관련한 ‘자문위원회’를 고용노동부 장관 산하에 두는 수준에 그쳤다.
노무를 제공한 사람이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에 관한 판단은 법원이 마련한 판단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현재는 이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판단 기준에 부합할 만한 세부적인 증거를 모두 제시하지 못하면 노동자성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증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용자가 일일이 반박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쪽에 유리하다. 부당해고의 경우 입증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는데, 이 경우엔 노동자가 “부당한 해고”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정당한 해고”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고 절차에 문제가 있거나 해고 사유가 합리적이지 못할 경우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법원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하게 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판단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면 기존 노동법을 통해서도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 적용도 별다른 논란없이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면서 노동자성 입증책임 전환 논의는 다른 국가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앞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에이비(AB)-5 법률을 통해 입증책임 전환을 입법화했고, 유럽연합도 유럽연합의회에서 입증책임 전환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입법지침 마련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하지만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에 입증책임 전환 관련 내용을 집어넣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배달·대리기사 등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특고(특수고용노동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특수고용과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입증책임에 관한 내용은 디지털 플랫폼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 전반에 적용돼야 한다”며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조항은 이 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에 명시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입장문을 내어 “사용자의 입증을 검증할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검증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선행 판례나 행정해석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성 판단 기준은 2006년 학원강사가 노동자임을 판단하면서 나온 판결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시와 지금은 노동시장의 모습이나 노동관계가 많이 바뀌었을뿐더러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린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강은미 의원(정의당)이 지난 9월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노동자로 추정”하되, 사용자가 ‘자영업자’에 해당한다는 일정 요건을 입증하면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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