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왼쪽 둘째)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집단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한겨레> 13일치 보도
‘연장근로 몰아치기 가능하게…재계 요구대로 ‘노동개악’’에 대해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재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하면 ‘1주 최대 80.5시간 근무가 가능하다’는 보도 내용에 대해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제도 남용을 우려하는 것은 상식과 통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연구회가 내놓은 반박을 다시 조목조목 따져봤다.
주 최장 80.5시간 근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연구회는 우선 ‘11시간 연속휴식이 보장돼도 주 최대 80.5시간, 1주에 하루를 쉬어도 69시간 근무 가능’이라는 표현이 “실태를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고 노동자가 일을 마친 뒤 다음 일하는 날까지 최소 11시간 연속휴식(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할 것 등을 정부에 권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근로시간을 계산해보자. 하루 24시간 가운데 11시간 연속휴식 시간을 빼면 13시간이 남는다. 근로기준법은 4시간 근무마다 30분의 휴게시간을 보장하므로, 13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빼면 하루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은 11.5시간이다. 주휴일에도 일한다고 가정하면, 1주 최대 근로시간은 11.5시간에 7일을 곱해 80.5시간이 되고 주휴일 1일을 쉴 경우 6일을 곱해 69시간이 된다.
연구회는 주휴일을 쉬지 못하고 1주에 7일 일하는 경우를 ‘극단적 상황’이라고 치부했다. “법정 주휴는 법이 강제하는 의무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를 가정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연구회가 언급한 법정 주휴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 휴일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원·고용노동부는 이 조항을 “일주일에 하루 이상 무조건 유급으로 ‘쉬어야’ 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56조 제2항 “휴일근로에 대해선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목은 ‘휴일’에 근무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이 반영해야 하는 입법 지침을 통해 ‘1주에 24시간 중단 없는 휴식(주휴일)’을 보장한다. 반면, 한국에선 휴일근로수당만 지급하면 주휴일에 근무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노동법학계에서는 유럽연합처럼 ‘주휴일 의무화’와 ‘일간휴식(24시간 내 11시간 연속휴식)’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연구회가 밝힌 것처럼 “충분한 휴식 보장을 통한 노동자 건강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회는 “1주에 1일 쉬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권고안엔 이를 의무화하라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주 최장 69시간 노동, 몇 주 동안 연속해선 할 수 없다?
연구회는 1주에 7일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한 채 권고안이 실현될 경우 주 최대 근로시간은 69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정 주에 집중 근로를 하면 나머지 주는 연장근로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특정주에 최대 69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29시간) 일하면 나머지 3~4주에 걸쳐 쓸 수 있는 연장근로는 23시간(월 단위 총 연장근로 52시간에서 29시간 제외)으로 줄어들고, 이 경우 2주 동안 연장근로(29시간+23시간)를 하면 (52시간을 채우므로) 나머지 주는 연장근로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몇 주 동안 연속 ‘주 최대 69시간’ 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로 한정했을 때만 유효한 이야기다. ‘분기’ ‘반기’ ‘연’으로 확대할 경우 여러 주에 걸쳐 주 최대 69시간 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관리 단위를 분기로 확대하면 석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총 연장근로는 140시간이다. 즉, 4주 연속 29시간 연장근로(기본 40시간 합치면 주 69시간)가 가능하다. 이렇게 관리 단위를 반기, 연으로 확대할수록 ‘주 최대 69시간’을 연속해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늘어난다.
노동부 고시인 ‘뇌심혈관 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보면 뇌심혈관 질환이 발생한 노동자가 4주 연속 64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우 업무와 질병 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사용자가 근로자 동의·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으면 주 52시간 초과 근로(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도 주 최대 노동시간을 64시간으로 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연구회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또 주 69시간씩 연속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놓고, ‘뇌심혈관 질환과 관련성이 강한’ 장시간 집중근로에 대한 대책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1996년 7월16일치. <한겨레> 지면. 당시엔 ‘변형근로근로시간제’라 불렸던 현 ‘유연근로제’ 도입 당시의 논의 내용을 담고 있다.
월 평균 연장근로 52시간 초과 사업장 1.4%에 불과하다?
연구회는 “2021년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의 월평균 연장근로시간은 10시간, 월평균 연장근로가 (근로기준법상 한도) 월 52시간을 초과하는 사업장은 1.4%에 불과하다”며 주 최대 69시간 노동 우려는 현실을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8월 노동부가 돌봄 종사자에 대한 장시간 근로 특별감독을 진행한 결과 연장근로 한도 위반 및 가산수당 과소 지급이 적발된 곳은 498곳 가운데 470곳(94.4%)에 달했다. 지난 3월 노동자 ‘집단 급성 간중독’을 일으킨 대흥알앤티는 노동부로부터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은 뒤, 일부 노동자들에게 주 최대 근로시간 64시간을 훌쩍 넘긴 주 89시간 동안 일을 시킨 사실이 적발됐다. 집단 직업병 발병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연장근로 한도 위반 사실조차 밝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 규제를 노사 자율에 맡기고 계산법이 복잡해질 경우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는 누가 주장하고 있나?
연구회는 전날 권고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도 “근로일·근로시간대에 대한 근로자의 ‘자율적’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제도”라며 “입법 취지와 제도 도입 절차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용자 재량 확대로 가정해 비판하는 것은 입법 취지 및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때,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율적 선택권을 주장해 선택근로제가 도입된 건 아니다. 정산 기간을 평균해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시·종업 시간을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재량근로제와 함께 1997년 3월 도입됐다. 1996년 12월 ‘날치기 통과’된 근로기준법에 담긴 내용으로, 당시 도입을 주장한 주체는 “노동력의 탄력적 운용”을 강조한 경영계다.
도입 이후 활용률이 저조하다 2018년 7월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 이후 선택근로제 적용 사업장이 크게 늘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선택근로제 활용 노동자는 2016년 26만명, 2017년 33만2천명에 머물다 2018년(54만1천명)부터 급증해 지난 8월엔 86만1천명이 됐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주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선택근로제를 활용해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막을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연구회가 권고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전업종 3개월 확대’는 노동계가 아닌 경영계가 요구해 온 내용이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확대도 노동자보다는 사용자 이익에 부합한다. ‘법정 근로’가 아닌 ‘연장 근로’를 유연화하는 것은 정해진 출근 시간은 그대로 둔 채, 퇴근시간만 유연해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은 고정한 채로, 퇴근 시간만 늦추고 싶은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몇%가 될까? 물론 노동자가 연장근로를 자율 조정해 다음날 할 일을 미리 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활용해 휴가를 가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면 사용자는 다른 시기에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노동자에 변경 요구(연차휴가 사용시기 변경권)를 할 수 있다. ‘2021년 근로자 휴가조사’ 보고서를 보면, 연차휴가 소진율은 71.6%에 그치며, 노동자들은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1~3순위 종합)로 △대체인력 부족(45.0%) △연차수당수령(43.7%) △업무량과다(35.9%) △작업일정(35.2%)을 꼽고 있다. 연구회가 실근로시간 단축의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운 ‘휴가 확대’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집중근로가 가능하도록 연장근로만 유연해지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지난 3월 대통령 인수위에 전달한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의 일부. 연구회의 권고내용 상당수가 내용이 일치하거나 비슷하다.
연구회는 “극단적 상황”으로 제도 남용을 우려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권순원 연구회 좌장(숙명여대 교수)은 연구회의 권고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연구회의) 법을 하시는 분들(전문가)은 법적으로 다툼이 되는 사건이나 문제가 되는 사건들이 극단에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에, 주로 그것을 고려해 제도나 정책을 고민한(했)다”며 “평균과 통계도 고려하고, 극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위험도 고려해 그 대안을 모색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극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언론의 지적에 대한 ‘발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노동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오용될 수 있는 법을 만들라고 권고한 것은 연구회다.
연구회는 또한 “연구회 활동과정에서 경영계를 비롯한 이해관계자 누구와도 의제부터 논의내용까지 상의한 바 없으며, 결과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한 바 없다”며 “‘재계 요구대로’ 라는 표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지난 3월 대통령 인수위에 전달한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의 내용과 연구회의 권고내용 상당수가 내용이 일치하거나 비슷하다. 경영계가 정부에 ‘건의’한 것과 연구회가 정부에 ‘권고’한 것이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