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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간접고용 봇물…‘정규직 꿈’ 산산이 부서져

등록 2007-08-26 19:13수정 2007-10-11 11:15

기업,용역·파견·사내하청 등 ‘분리’ 확산
유통·금융·제조업체·공공부문 예외없어
이랜드 빙산의 일각…정부 실태도 몰라
지난 7월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 이제 곧 두 달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입법 취지의 확인이 쉽지 않다. 되레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기업의 생존’을 앞세우는 사용자가 격한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노동계와 정부도 법 개정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 사이 우리의 일터에서는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노동자’, 영원한 차별 속에서 일해야 하는 ‘분리직군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갈등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는 ‘차별받는 노동’의 문제점 진단 및 해법을 2부 8차례에 나눠 싣는다.

서울 롯데호텔 소공동 본점 조리부에서 13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해온 ㅊ(55)씨는 이달에만 뷔페업장과 연회장, 양식당 등으로 서너 차례나 근무지가 바뀌었다. 호텔 쪽은 이유도 설명하지 않아, 그는 단지 ‘호텔 쪽의 앙갚음’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지난 6월 말 호텔 쪽이 조리부 소속 비정규직 43명에게 “외부용역업체로 전직하라”고 요구했지만, ㅊ씨 등 동료 14명은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약직보다 더 열악한 용역업체로 옮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텔 쪽은 ㅊ씨 등 14명에 대한 근무관리를 용역업체로 이미 넘긴 상태다. ㅊ씨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화’의 고통을 경험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접 고용한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는 대신 용역, 파견, 사내도급 등 이른바 ‘간접고용’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봇물 터진 듯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의 역사가 긴 호텔 등 서비스업종에서는 더 많은 직종으로 확대되고 있고, 유통·금융·제조업체 등 다른 업종은 물론 공공부문에서까지 ‘골치 아픈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급속히 자리잡고 있다. 이는 간접고용이 현행 비정규직법의 규제 바깥에 있는데다 ‘비정규직 감소와 정규직 증가’라는 형식적 결과를 낳는 데 기인하는 바 크다.

이랜드가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모두 외주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바꾸려다 거센 역풍을 맞고 있지만, 유통업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하고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계약직 계산원 100여명을 모두 외부 용역업체로 옮기게 했다. 정규직 계산원 500여명도 영업·지원 부서로 돌렸다. 계산원은 모두 간접고용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신세계 등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비정규직 해법으로 삼고 있는 업체들도 있지만, 세이브존 등 많은 중·대형 유통업체들은 용역·파견 등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하나은행은 계약직을 파견 노동자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 은행은 지난 6월, 당시 공석이었던 계약직 노동자들의 자리에 파견업체 노동자 21명을 투입했다. 하나은행 노조의 이병승 정책부장은 “은행이 사무직 비정규 노동자 500여명을 파견 노동자로 대체하려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모두 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일선 지점의 창구를 칸막이로 나눠 800여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창구직원에게는 상품안내, 환율조회, 카드발급 등을 뺀 간단한 입출금 업무만 맡기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결국 용역업체 직원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미 사내하청 방식으로 수천~수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간접고용을 해온 현대자동차와 지엠대우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들이나 조선·반도체업체들은 ‘불법 파견’ 논란을 잠재우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그대로 쓰려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와 지엠대우차는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과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에서 섞여 일해온 게 불법 시비를 일으킨 원인이라고 보고, 아예 공장이나 생산라인별로 노동자들을 분리하는 ‘형식’의 변화를 추진 중이다.

간접고용엔 공공부문도 뒤지지 않는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마저 소관 사업을 민간 기업·단체 등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간접고용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만 해도 지난 10일, 2010년까지 여성보호센터와 난지물재생센터 등 산하 사업소·기관 30곳 가운데 19개를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 광역·기초 자치단체들도 예외 없이 기관당 많게는 수십 건의 민간위탁을 추진하거나 이미 시행 중이다.

하지만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이다. 열악한 형편의 비정규직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정부도 그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은 “기업은 경영의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다”며 “간접고용 등 외주화 자체를 반대할 게 아니라, 고용이 유지되기 위한 최선의 해법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2007 공장문학의 밤 ‘우리가 만드는 세상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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