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정규-비정규의 벽 넘어 ‘단일노조’로 가야

등록 2008-07-03 21:32수정 2008-07-03 22:19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1040일을 맞아 각계 인사 1040명이 하루 지지단식을 벌인 지난달 28일, 각계 인사들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8보1배’를 하며 청와대를 향해 서울 태평로를 지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1040일을 맞아 각계 인사 1040명이 하루 지지단식을 벌인 지난달 28일, 각계 인사들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8보1배’를 하며 청와대를 향해 서울 태평로를 지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법 비웃는 고용불안·차별
현대차 등 고용불안 우려
‘비정규 통합’ 외면
‘일자리 뺏는다’
허구적인 논리가 발목 잡아
뉴코아 등 아름다운 연대…
희망의 길 보여

“다음달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 허용 여부를 결정짓는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지난달 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현대자동차문화회관 강당에 모인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대의원 400여명은 조창민(43) 사무국장의 말에 귀를 세웠다. 사내 하청 노동자, 식당·경비 등 용역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문을 열자는 안건이다. 그러려면 대의원대회 참석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번이 세번째 시도다. 지난해 1월엔 압도적 반대로, 6월엔 찬성 211표 대 반대 210표로 부결됐다. 2003년 설립된 비정규직 노조에게 정규직 노조가 ‘벽’을 친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의 노조에 가입한다”는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규약에 따라, 현대차지부는 올해 다시 벽을 허물려 한다. 이번에도 낙관할 수는 없다. 2004~2005년 노조 간부였던 서동식씨는 “비정규직한테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현장 정서를 대의원들이 거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대의엔 수긍한다. 발목을 잡는 것은 ‘고용 불안’이다. 1998년 이후 도입된 정리해고제가 도사리고 있고, ‘노동자 고용 승계 부담 없이도 사내 하청업체를 갈아치울 수 있는’ 지금의 도급계약 방식에선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재적 경쟁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정규직 노조는 생산물량이 적은 공장의 조합원 250여명을 생산물량이 많은 공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데 회사와 동의했고, 비정규직들은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다. 정규직 노조가 합의해 온 비정규직의 성과급은 정규직의 50~70% 수준이다.

현대차 노조 통합 추진
현대차 노조 통합 추진
비정규직 노조들이 ‘조직 통합’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기아차지부는 완성차 4사 가운데 가장 먼저 지난해 4월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의 노조 직접 가입’을 통과시키고, 올해 5월 노조 통합을 성사시켰다. 비정규직지회가 ‘노조원 직접 가입’에 반대하기도 하고, 따로 파업을 벌이다 정규직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김영성 전 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 숫자가 적다고 임·단협에서 비정규직들의 요구가 묻혀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기아차지부는 올해 비정규직 단협 요구안을 별도로 마련해 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거나 ‘압박’하기도 한다. 코스콤 정규직 노조는 ‘불법 파견’과 ‘집단 해고’에 항의해 파업 중인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반대했다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의 징계를 받자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지엠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9월부터 단식·농성 등으로 힘겹게 맞서고 있지만, 정규직 노조의 지원은 거의 없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아름다운 연대’를 실천하는 정규직 노조들도 있다. 뉴코아노조가 대표적이다.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 이경자씨는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해고되거나 무임금으로 1년 넘게 함께해 준 정규직 동료들을 생각하면, 승리하지 않고서 일터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한국자산관리지부도 2003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승인한 뒤 2006년 정규직-비정규직 통합 노조를 출범시켰고, 회사와 협의해 비정규직 470명을 정규직화했다. 국민은행지부는 오는 9월 조합원 투표를 치러 무기계약직 5300명의 노조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전북 군산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부가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비정규직 420명의 가입을 승인했다.

박유기(43) 전 현대차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허구적 논리에 깨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일 노조를 이뤄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점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 함께 맞서는 것이 곧 제2의 노조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끝>

황예랑, 울산/김광수 기자

yrcomm@hani.co.kr


산별 차원 대응이 연대 넓힐 실마리

10%대 조직률이 걸림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120개 병원 4만여명)은 올해 산업별 단체협약 요구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차별 시정’을 넣고, 노·사가 100억원씩 출연하는 산별연대 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 고용 안정 등의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정규직 임금 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 고용 안정에 쓰기로 합의해, 비정규직 207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37개 금융기관 8만5천여명)도 산별 중앙협약 요구에 ‘비정규직 임금 11.6% 인상(정규직은 5.8%),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고용 안정’을 내걸었다.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산업별 노조들이 늘고 있다. 기업별 노조 체제로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서 보듯, 개별 기업들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나타나는 이해 충돌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해 산별 수준의 노·사 협상을 해 온 보건의료노조의 이주호 정책실장은 “산별 차원에선 개별 기업의 인건비 경쟁에 따른 부담 등을 함께 논의할 수 있어 노·사 협의가 더 원활하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산별 차원에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쉽고, 개별 기업에서 정규직과 이해가 상치되는 부분을 벗어나 거시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큰 걸림돌은 낮은 노조 조직률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0.3%,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이 2.8%에 그치고 있다.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단위노조는 물론 산별 노조 모두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촛불도 ‘무심’ 비정규직 ‘남의 일’?

두 달 넘게 ‘촛불’이 온나라를 달구는 사이, 비정규직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촛불 행렬에서 교육·의료·공기업 같은 이슈도 나왔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촛불에 대거 동참했고, “비정규직은 노동의 광우병입니다”라는 손팻말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난 1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시국미사에서 만난 이호우(31·회사원)씨는 “비정규직 문제는 광우병, 의료 민영화만큼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30대인 양소연씨는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지만, 이명박 정부만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려워서 촛불 집회 때 잘 안 보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촛불 집회에 나오면서도,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촛불을 켜 놓고 공부한다던 비정규직 조합원의 말이 떠올라 차마 촛불을 못 켰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의 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들에 대한 실망감이 묻어난다. 촛불과 비정규직 사이의 ‘거리’는 먼 것일까?

지난달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지부 파업 때 ‘촛불 민심’은 예전 파업 때와는 달랐다. 물류가 멈췄을 때, 많은 시민들은 화물차 운전사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화물연대 사무실에는 “여러분의 파업을 지지합니다”라는 팩스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화물연대는 파업을 푼 뒤에도 경찰의 촛불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어 촛불 시민들의 지지에 답했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화물연대가 ‘미국산 쇠고기 운송 거부’를 선언하자 시민들이 관심을 보내줬고, 고유가로 ‘운행할수록 적자’인 우리의 현실에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낯설어하곤 했다. 이호우씨는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우리 생활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지를 알게 되면,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과 차별,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민 등을 풀어야 할 노동단체들에, 촛불 시민들이 던지는 숙제처럼 들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