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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아기예수 다시 오신다면 비정규직 아픈 가슴속에…”

등록 2008-12-25 11:33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성탄미사가 열린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24일 오후 호인수 신부(맨 왼쪽)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성탄미사가 열린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24일 오후 호인수 신부(맨 왼쪽)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투쟁 99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성탄 미사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강남성모병원 중앙병동 앞 마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호인수 신부는 여러 차례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호 신부 앞에는 차가운 바닥과 싸늘한 공기를 견디며 100여명이 줄지어 앉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맨앞 줄에 앉은 8명은 바로 이 병원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계약 만료를 이유로 사실상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투쟁은 이날로 99일째다.

이날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성탄 미사’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등에 소속된 천주교 신자들이 마련했다. 강남성모병원은 천주교 서울교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실질적인 사용자가 천주교 교구다. 그래서 더욱 미사를 집전할 신부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천교구 소속으로 오랫동안 노동사목을 해 왔던 호 신부가 미사 집전을 수락했다.

호 신부는 “성탄절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날”이라며 “우리도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가 되려면 가진 자인 하늘이 못 가진 자인 땅으로 자꾸 내려와야 한다”며, 병원 쪽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끌어안아 보듬을 것을 호소했다.

“공교롭게도 투쟁 100일째 날이 성탄절이 될 줄은 몰랐어요.”

호 신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해고자’ 이세영(28·여)씨는 지난해 성탄절 전야에 동료 4명과 함께 심야 영화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밀려 휴가를 받기 힘든데, 그 날은 운이 좋아 함께 휴가를 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별다른 걱정 없이 즐거웠던 그때엔, 이런 성탄절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병원은 그동안 직접 고용했던 간호조무사들을 몇 해 전부터 ‘외주화’로 돌려 파견 노동자로 간접 고용해 왔다. 이씨도 2006년 직접 고용된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였으나, 7달 뒤엔 용역업체 소속으로 병원에 파견된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결국 지난 9월30일에는 이씨를 포함한 28명의 간호조무사들이 사실상 해고됐다. ‘불법 파견’이라는 비판이 잇따랐으나, 병원 쪽은 여전히 ‘직접 고용 불가’를 내세우며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씨는 “그래도 이렇게 우리를 찾아와 미사를 함께 드려주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난다”며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날 미사를 주도한 권오광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대표는 “교회 안에서도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다”며 “교계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시 우리 땅에 오신다면, 가장 소외받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현실 속으로 오시리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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