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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인턴 독배’라도 들이킬까…청년 가슴 ‘숯덩이’

등록 2009-03-12 14:03수정 2009-03-12 14:13

취업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10일 저녁 자습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취업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10일 저녁 자습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거꾸로 가는 MB 일자리정책
③ 얼어붙은 신규채용, 3인의 절망
세계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신규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도 인턴이 대부분이어서 청년세대들의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번 고용 위기는 경기침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엇박자 대책과 대졸 초임 삭감과 같은 청년세대에 대한 불이익 조처가 나오면서 청년세대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공시족’(공공부문 시험 준비자)과 취업재수생, 졸업예정자 3명의 사례를 통해 청년세대들이 요즘 정부 고용정책에 대해 느끼는 소회를 들여다봤다.

공시 채용 ‘반토막’에 답답…생활 어려워 귀향
초임 삭감에 ‘뚜껑’…“취업해도 생계 불안” 걱정
고용시장 얼어붙어 휴학…하반기 경쟁도 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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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대학생 김아무개(24)씨는 지난 1월 서울 노량진 고시원에 4.96㎡(1.5평) 크기의 방을 마련했다. 경북 영양이 고향인 김씨는 2년 전부터 휴학한 채 집과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오가며 9급 일반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왔다. 지난해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그는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자 아예 서울을 유학을 온 것이다. 그는 여성이면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이 취업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일찌감치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최근 나오는 뉴스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희망하는 경북 9급 행정직 채용인원이 지난해 336명에서 올해 78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 위기에 정규직인 공무원은 줄이면서, 일자리 만든다며 임시직인 청년 인턴을 늘리는 정부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 했다. 오히려 이런 때는 공공부문이 고용의 안전판 구실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통닭 가게를 하는 부모님이 경기침체 여파로 가게 문을 닫게 돼 한달 100만원에 이르는 생활비마저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다음달 고시원을 떠나 귀향하겠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오다 낙망하는 청년들은 김씨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7·9급 지방공무원 채용인원은 4242명으로 지난해(9308명)보다 5066명이나 급감했고, 중앙 부처의 7·9급 공무원도 지난해보다 1609명 줄인 2920명에 불과한 탓이다. 정부는 그 대신 1만여명 넘는 ‘행정 인턴’을 뽑을 방침이다.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아무개(33)씨는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행정 인턴을 지원할 수가 없다”며 “임시 일자리보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례2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베트남어 통·번역 일을 해온 김아무개(28)씨는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찾으려 지난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외국어에 자신이 있어 국외 사업이나 무역 분야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음에 뒀던 기업들은 올해 들어 단 한명도 뽑지 않는다.

“눈여겨보고 있던 포스코에서 채용 공고가 났던데 100% 청년 인턴이에요. 두산그룹은 경력 사원만 뽑고, 청년 인턴은 임시직이어서 내키질 않아요. 지원해야 할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야 할 처지다. 대학 때 받았던 학자금 대출 원금을 매월 40만~50만원씩 상환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도 요새 힘드셔서 차마 도와 달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가끔은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납부하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김씨에게 ‘대졸 초임 삭감’은 참으로 ‘뚜껑 열리는 일’이다. “만약 일이 잘 풀려서 취업하더라도 대졸 초임을 삭감해 연봉이 1500만~2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제가 학자금 대출 갚는 데 지장이 없을까요? 안정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까요? 문제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당장 ‘등록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김씨는 “오는 6월까지도 취업이 안 되면 인턴이라는 ‘독배’도 마셔야 할 것 같다”며 타들어가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례3 “청년 인턴은 대부분 졸업예정자가 아닌 졸업자 대상이더라고요. 이거야말로 ‘구색 맞추기’ 아닌가요?”

대학생 정아무개(28)씨는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둔 이번 학기에 결국 휴학을 하고 말았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차마 발을 붙이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채용 공고가 이따금 나오기에 ‘이제 조금 풀리려나’ 생각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더 우울해졌다. 대부분 인턴 채용인데다가 그나마 ‘졸업예정자’는 뽑지 않는다. 정씨는 “인턴은 졸업예정자 중심으로 채용하는 것 아니었냐”며 “당장 ‘취업준비자’로 통계가 잡히는 졸업생들에게 주는 임시 일자리로 보여 씁쓸하다”고 말했다.

휴학한 뒤에도 정씨는 마음이 무겁다. 올 하반기 공채는 훨씬 더 어마어마한 경쟁이 벌어질 거란 예상 때문이다. 정규직 진출을 못한 인턴들이 다시 채용 시장에 나오고, 정씨 같은 졸업예정자까지 뛰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구직자들을 임시방편으로 끌어안은 정책의 한계가 아니겠어요? 하반기 채용시장이 어떻게 될지 정말 암담합니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정부는 대졸 초임 삭감 등으로 경제위기에 따른 부담을 청년 구직자와 그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청년 구직자들을 받쳐 줬던 ‘가족 안전망’마저 허약해지고 있어 청년들의 일자리 전망이 더욱 어둡다”고 말했다.

최원형 이정훈 김민경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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