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코튼 국제운수노련(ITF) 사무총장
국제운수노련 사무총장 특별기고
세계 178개국 708개의 가맹조직 500만 운수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국제운수노련(ITF)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도파업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철도를 비롯한 운수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한국처럼 노동자가 단순히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해고와 같은 엄청난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2009년 철도파업 당시 벌어졌던 노동자 탄압의 실상을 들으면서 정말 믿기 힘들었습니다. 작년 11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와 코레일에 2009년 철도파업의 부당한 탄압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했음에도 아직 아무런 시정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데, 이번 파업에서도 또다시 동일한 잘못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하물며 현재 철도노조가 한국 법이 정한 대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을 하고 있고, 어떠한 폭력행위 없이 평화로운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한국 정부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를 이해하기 힘든 점은 단지 파업에 대한 문제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도정책의 대립은 단지 한국에서만 발생한 문제가 아닙니다. 철도산업은 강한 공공성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에서 불가피하게 많은 적자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정부와 자본은 철도산업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업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철도의 공공적 가치 대신 적자 축소를 목표로 한 수익성 추구가 철도 운영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이를 위해 건설과 운영을 나눠 선로접근권을 개방하고, 복수의 회사에 운영권을 주어 수익성 경쟁을 하는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철도 구조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유럽 철도에 적용하려는 제4차 철도패키지의 내용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도산업의 상업화 정책은 영국을 비롯하여 신자유주의 철도정책을 앞장서 실행한 나라들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낳게 되면서 커다란 전환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운영회사간의 수익성 경쟁은 요금 인상이나 적자노선의 감축(폐지) 같은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와 동일한 목표와 내용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단지 경쟁체제일 뿐 민영화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철도산업에 관한 오랜 논쟁의 본질을 감추려는 눈가림에 불과합니다.
한국 정부에 다시 한번 고언드립니다. 한국 철도산업 발전을 위한 진정한 대안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습니다. 정부와 코레일, 그리고 철도노동자와 시민사회 전문가 모두의 다양한 의견이 오랜 시간 치열한 토론의 과정에서 함께 모여질 때만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무리하고 조급한 정책 추진을 중단하십시오. 철도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당장 중단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세요.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와 폭넓게 대화하세요. 그 길만이 한국 철도가 살길이고 철도 노사가 상생하는 길입니다.
스티븐 코튼 국제운수노련(ITF)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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