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정책대안 토론회
“운이 좋았다.” 오랜 시간 경력 단절 없이 일한 여성들은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운’을 이유로 꼽았다. 여기서 ‘운’은 친정 어머니 등 보조양육자와 동의어다. 20년 가까이 회사원으로 일하는 김연정(가명·38)씨가 그렇다. 김씨는 “엄마는 제가 일하는 걸 전적으로 찬성해 함께 살며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덕분에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했다.
일하는 여성이 늘자 일·가정 양립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이 확대돼 왔다. 육아휴직이 확대되고 무상보육도 도입됐다. 그런데도 김씨처럼 쉬지 않고 일하려는 여성들이 많다. ‘모성보호’ 정책을 누리는 게 되레 여성의 경력단절의 빌미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7일 “2000년대 초반 산전휴가와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여성들이 일·가정 양립 확대 방향이 오히려 경력단절의 빌미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기존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여성의 경력 연장에 의미있는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여성에게만’ 적용된 정책이라 회사가 육아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 여성 노동자를 핵심 인력에 배치하지 않고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다. 육아 책임을 남녀가 동등하게 나눠 짊어지지 않는 한,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경력 지속은 더 어렵다. 임금 노동자 가운데 남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26.2%인데 여성은 39.9%(2014년 3월 기준)다.
정부는 뒤늦게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에 여성고용 정책의 목표를 뒀지만, 일자리의 질이나 임금 수준이 이전보다 하락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 뒤 받은 월 평균임금(149만6천원)은 경력단절이 없는 여성의 월 평균임금(204만4천원)의 73.2% 수준이다.
회사에 모든 걸 걸어야 승진할 수 있는 문화도 여성 노동자를 힘겹게 한다. 서울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일하다 육아휴직 중인 하지연(가명·33)씨는 “육아휴직으로 인사고과를 낮게 받으면 과장 진급에서 밀릴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여성 임원 2명도 가정을 내팽개쳐 승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선미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경력 단절 이후의 재취업에 여성 고용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여성노동정책의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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