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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특성화고 현장실습협약서 ‘유명무실’

등록 2016-06-16 19:53수정 2016-06-16 22:10

학생 권리보호 위해 마련했지만
근로계약서 우선해 휴지에 불과
학교에선 밀어내기식 취업압박에
숨진 김군 전공 무관 외식업체 취업
‘조기취업’한 회사에서 하루 11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김아무개(19)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한겨레> 6월16일치 1면)과 관련, 현장실습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표준협약서)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체와 별도로 맺은 ‘근로계약서’를 표준협약서에 우선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현장실습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군이 ‘최대 8시간 미만 근로’를 명시한 표준협약서 대신 ‘최대 11시간 미만 근로’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계약서의 적용을 받은 이유에 대해 업체 쪽에선 “현장실습으로 소개받았으나 (김군이) 정규직 입사를 희망해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 직원과 동일한 근로조건”이라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업체가 현장실습생에게 불리한 근로계약서를 적용할 수 있었던 건 ‘현장실습 계약과 함께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현장실습생의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은 해당 근로계약에 따른다’고 정부가 허용했기 때문이다. 학생 쪽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급적 표준협약서와 근로계약서를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하도록 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쳤다.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 “근로계약이 우선한다는 조항을 업체에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 때문에 표준협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오는 8월부터 개정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시행되면 협약서와 실제 근로계약서 내용이 다른 업체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군이 전공(인터넷쇼핑몰)과 전혀 관련 없는 외식업체에 취업한 배경엔 특성화고 전반에 만연한 ‘취업률 높이기’ 압박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가 발표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취업률’을 보면, 2011년 취업률은 25.9%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올라 2015년엔 46.6%로 2명 중 1명 꼴이었다. 정부의 청년 취업률 높이기 분위기 속에서, 교육청이 학교별, 교사별 차등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 등으로 취업률 수치 끌어올리기에 나서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에서 학생들 현장실습을 담당하는 교사는 “학교 안에선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이 있고, 취업률을 조사하는 3월 말까지는 ‘어지간하면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학생들한테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군이 다니던 학교는 ‘외식업’과 관련된 전공이 전혀 없는데도, 취업할 만한 업체 명단을 담은 공고문에 이 업체의 이름을 넣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김군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외식업체에 취업한 학교 친구 김아무개(19)군은 “학교가 취업할 만한 업체 가운데 하나로 이 업체를 추천했다. 대학진로 같은 다른 목적이 없으면 대부분 취업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졸업을 앞두고선) 학교에선 현장실습을 나가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수업도 진행하지 않는다. 외부 업체에 취직이 어려울 경우 친척 등 지인의 직장에서 일하는 것까지 권한다”고 전했다.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와는 달리 ‘어디든 취직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학생들한테 심어줬다는 것이다. 김군의 아버지(55)도 “입사 3개월이 지나 정규직이 되면 연봉도 1800만~2000만원 수준인데다, 주5일 근무를 할 수 있는 괜찮은 일터라고 담임 선생님한테 설명을 들어, 아들이 전공과도 상관 없이 이 회사에 가게 됐다”며 “이 회사가 이런 회사라는 걸 알았다면 아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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