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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쓰레기장? 사무실?’…자음과모음, 편집자 또 ‘부당' 발령

등록 2016-06-28 20:34수정 2016-06-29 08:28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지난해 3월 편집자 윤정기(30)씨를 부당 전보해 논란을 일으켰던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이번에는 윤씨를 사실상 해고에 준하는 발령지로 배속해 파문이 일고 있다.

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와 윤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자음과모음 편집자로 일해온 윤씨는 27일부터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한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윤씨가 출근한 사무실은 씻지도 않은 설거지 거리와 벽면에서 떨어져 나와 너덜거리는 벽지들, 쓰레기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책상과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회사는 왜 이사를 가는 지도,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며 “윤씨에게 모욕을 주려고 그랬던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윤씨 부당 전보 사건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음과모음이 문학 책을 편집하던 윤씨를 출판사에서 32㎞ 떨어진 경기 파주시의 물류 창고로 출근하라는 일방적인 보직 발령을 내린 것이다. (▶관련 기사 : 실적 압박·부당인사 등 출판사 ‘갑질’…29살 청년 편집자는 꿈을 뺏겼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 이 발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고용노동부 고양지청에 의하면, 윤씨 등 자음과모음 직원들은 입사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도 없었다. 이 때문에 윤씨는 월급 통장에 엄연히 ‘자음과모음'이 찍히는 출판사 자음과모음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계열사인 ‘이지북' 소속이 적힌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해야했다. 지난해 4월 <한겨레> 보도 당시 자음과모음 강병철 대표와 정은영 주간(현 자음과모음 대표)은 “윤정기의 계열사 ‘이지북' 소속은 잘못 표기된 실수였다.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윤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로 물류 창고에서 편집자로 복귀한 뒤 이번에는 ‘자음과모음(이룸)'으로 된 근로계약서에 새로 사인했다. 곧 ‘더 이룸'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지난해 부당 발령 사태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난 강병철 사장이 대표일 뿐 자음과모음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강 사장은 문아무개 씨를 ‘더 이룸' 이사에 선임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이 과정에서 문 이사가 사무실 안에서 서슴없이 흡연하면서 윤씨에게 ‘이 새끼' 운운하고, ‘어떻게 해야 널 죽여버릴까 싶다'는 협박까지 내뱉었다”고 밝혔다.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자음과모음은 지난해 8월 윤씨와 이 출판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2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회사의 부당 행위에 대한 이들의 공개적 문제 제기가 강병철 대표와 자음과모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였다. (▶관련 기사 : ‘부당전보 갑질’ 자음과모음, 피해자 등에 외려 2억 손배소)

자음과모음은 또 윤씨가 편집자로 복귀한 뒤에도 책 편집 일을 맡기지 않고 교정교열만 맡겼다. 이 과정에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조합원들이 1인 시위를 여는 등 교섭을 요구했고, 마침내 열린 6차례의 교섭에서 지부는 △윤씨의 책 편집 업무 정상화 △부당전보 사태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취업규칙 개정 △노사위원회 설립 △윤씨 소속을 계열사에서 자음과모음으로 변경 △강병철 전 대표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부는 △윤씨의 책 편집 업무 정상화 △윤씨 소속을 계열사에서 자음과모음으로 변경 등 두 가지 사안만 추려 최종 요구안으로 다시 제시했으나, 자음과모음은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교섭은 지난 24일 최종 결렬됐다. 쓰레기장 같은 도화동 사무실로의 발령은 결렬 이후 나온 ‘사실상의 해고' 조처다. 윤씨는 “물류 창고에서 돌아온 뒤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음과모음 본사에서 근무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이런 근무환경에서 일하라는 조처가 노동자에 대한 자음과모음 사측의 인식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이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편집자 윤정기 씨가 출근을 명령받은 사무실 내부. 사진 :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제공
정은영 자음과모음 대표는 이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윤씨가 (물류 창고에서) 복귀하는 게 맞다는 판결과 함께 윤씨의 소속이 자음과모음이 아니라 강병철 사장이 대표로 있는 ‘더 이룸' 소속이 맞다는 결론도 함께 나왔다”며 “‘더 이룸'은 강 사장 개인이 세운 회사이기 때문에 자음과모음과는 관계가 없고, 자음과모음과 더 이룸은 원청도 하청도 계열사도 아니고 다른 사업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일부러 쓰레기 같은 사무실에 발령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무실을 못 봤기 때문에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다”며 “일부러 발령낸 건 아니다. 의논을 잘해서 일할만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최종 교섭 결렬 이유에 대해서도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 준수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룸 쪽에서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강병철 사장의 사과는 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거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훈 현소은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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