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고 황사 먼지가 심한 봄날이었다. 며느리와 수족이 불편한 시어머니가 집을 나섰다.
“어머니, 여기 좀 계세요. 저 농협에 가서 돈 좀 찾아올게요.”
시어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치매기가 있는 시어머니가 한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아무도 감당해낼 수가 없다. 시어머니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엄마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같은 눈빛으로 며느리를 쳐다보았다.
남편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3년 전에 죽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에게 중풍과 치매증세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찜질방 청소부를 하면서 시어머니 수발을 하고 두 아이를 공부시키는 일은 며느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참다못해 시집간 두 시누이에게 시어머니를 번갈아 모시자고 했으나 가난한 시누이들은 친정에 발길조차 끊어버렸다.
농협에서 돈을 찾고 공과금을 납부한 며느리는 골목길에 숨어서 시어머니가 앉아있는 버스 정류장 쪽을 몰래 지켜보았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어머니는 꼼짝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천벌 받을 노릇이었지만 두 아이와 먹고 살자면 이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가 시어머니를 파출소에 데려다 줄 것이고 시어머니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지도 모른다. 며느리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지나 도망치듯 집으로 가던 며느리는 쑥떡에 콩고물을 묻히고 있던 노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쑥떡은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며느리는 쑥떡을 2천원어치 샀다. 그 사이 빗방울이 듣자 행인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걷던 며느리는 갑자기 되돌아서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비가 오는데도 그 자리에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마치 의자와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명치를 주먹으로 힘껏 내지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 숨이 턱 막혀왔다. 오줌을 쌌는지 시어머니의 몸에서 지린내가 풍겼다.
“내가 정말 못살아. 우리 어머니, 또 오줌 쌌구나.”
며느리의 핀잔에는 아랑곳 않고 비닐봉지를 홱 낚아챈 시어머니는 쑥떡을 입에 집어넣으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어머니의 팔을 부축해 일으키던 며느리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깨물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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