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영미는 매니큐어를 바르기 위해 신부에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했다. 신부화장을 하느라고 몸을 맡기고 있던 신부가 손을 뒤로 뺐다.
“매니큐어는 바르지 마세요.”
영미는 의아한 기분이 들어 신부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을 다쳤어요.” 신부가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손등은 검붉은 흉터로 뒤덮여있고 손가락 두 개가 반쯤이나 잘려나간 흉한 손이었다. 영미는 지금까지 웨딩 숍에서 일하며 신부화장을 수없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흉측한 손을 가진 신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영미는 얼굴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난감해서 허둥거렸다. “놀라셨죠? 10년 전에 방직 공장에 다니다가 다친 손이에요. 손을 다치고 나서는 결혼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어요. 나를 좋아하던 사람한테서 늘 도망 다녔어요. 자폐증 환자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죠. 지금은 저 사람이 나를 동정해서 저러겠지만 언젠가는 나를 떠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이는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느티나무처럼 제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려준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영미는 얼마 전 헤어진 철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영미의 부모는 철호가 여자를 고생시킬 녀석이라며 헤어지라고 날마다 닦달을 했다. 철호는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성실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무엇보다 영미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남달랐다. 언젠가 철호의 공장에서 일어난 파업현장의 광경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던 철호의 모습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는데 때 마침 그 장면을 영미의 부모가 보게 된 것이었다. “아! 참,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어졌어요. 저 변덕 심하죠? 잘린 손가락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어쩌나 싶어서 그랬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릴까봐서요. 늘 당당하자고 마음먹는데도, 아직 습관을 못 버렸나 봐요. 잘린 손가락이면 어때요. 남아있는 손톱 세 개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세요. 예쁘게 발라주셔야 해요.” 수줍은 표정으로 웃는 신부의 얼굴이 목련꽃 같았다. 영미는 신부의 손톱에 수를 놓듯 세심하게 매니큐어를 발랐다. 이렇게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매니큐어를 바르기는 처음이었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 세 개가 손톱 위에 내려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부화장을 마치고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녀는 여느 신부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신랑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눈이 부신 듯 신부를 쳐다보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모습을 영미는 놓치지 않았다. 절대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서로의 손을 꽉 맞잡고 걸어 나가는 연인들을 지켜보는 영미의 눈가에도 반짝 이슬이 맺혔다. 김옥숙/소설가
영미는 의아한 기분이 들어 신부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을 다쳤어요.” 신부가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손등은 검붉은 흉터로 뒤덮여있고 손가락 두 개가 반쯤이나 잘려나간 흉한 손이었다. 영미는 지금까지 웨딩 숍에서 일하며 신부화장을 수없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흉측한 손을 가진 신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영미는 얼굴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난감해서 허둥거렸다. “놀라셨죠? 10년 전에 방직 공장에 다니다가 다친 손이에요. 손을 다치고 나서는 결혼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어요. 나를 좋아하던 사람한테서 늘 도망 다녔어요. 자폐증 환자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죠. 지금은 저 사람이 나를 동정해서 저러겠지만 언젠가는 나를 떠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이는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느티나무처럼 제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려준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영미는 얼마 전 헤어진 철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영미의 부모는 철호가 여자를 고생시킬 녀석이라며 헤어지라고 날마다 닦달을 했다. 철호는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성실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무엇보다 영미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남달랐다. 언젠가 철호의 공장에서 일어난 파업현장의 광경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던 철호의 모습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는데 때 마침 그 장면을 영미의 부모가 보게 된 것이었다. “아! 참,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어졌어요. 저 변덕 심하죠? 잘린 손가락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어쩌나 싶어서 그랬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릴까봐서요. 늘 당당하자고 마음먹는데도, 아직 습관을 못 버렸나 봐요. 잘린 손가락이면 어때요. 남아있는 손톱 세 개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세요. 예쁘게 발라주셔야 해요.” 수줍은 표정으로 웃는 신부의 얼굴이 목련꽃 같았다. 영미는 신부의 손톱에 수를 놓듯 세심하게 매니큐어를 발랐다. 이렇게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매니큐어를 바르기는 처음이었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 세 개가 손톱 위에 내려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부화장을 마치고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녀는 여느 신부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신랑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눈이 부신 듯 신부를 쳐다보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모습을 영미는 놓치지 않았다. 절대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서로의 손을 꽉 맞잡고 걸어 나가는 연인들을 지켜보는 영미의 눈가에도 반짝 이슬이 맺혔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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