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혜옥은 잔뜩 화가 나 있습니다. 두 살배기 둘째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고 직장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아이를 맡겨볼까 해서 말을 꺼내자 친정 엄마는 벌컥 화를 냈습니다.
“느거 아를 와 내 보고 키우라카노? 인제는 나도, 내하고 싶은 거 하고 살란다.”
텃밭의 채소를 키우거나, 노인 대학의 노래 교실에 다니거나, 약 장사 구경을 하러 다니는 게 친정 엄마의 일과입니다. 자식들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시던 분이 대뜸 화부터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106동 앞에 산지 직송 사과가 왔다고 많이 이용하라는 관리실의 안내방송이 들려옵니다. 친정 엄마와 혜옥은 과일 중에서 사과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때 문득 사과에 얽힌 지난 일이 혜옥의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혜옥의 집은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엄마가 걸어서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먼 동네의 사과 밭으로 일을 나간 날이었습니다. 삶은 고구마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목이 빠져라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은 동네 어귀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자루를 머리에 인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내려놓은 불룩한 자루에는 잔뜩 멍이 들거나, 벌레가 먹거나, 한쪽 귀퉁이가 썩은 사과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사과 구경은 제사나 명절 때 말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은 썩은 사과건 말건 아랑곳 않고 사과를 한입 가득 베어 먹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혜옥이 먹어본 사과 중에 그렇게 맛있었던 사과는 다시는 없었지요.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한 일당 대신, 사과를 일당으로 달라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읍내 오일장에라도 가는 날이면 아이들이 늘 사과를 사달라고 졸랐기 때문이었지요. 사과를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자식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사과를 실컷 먹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그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불룩하고 무거운 사과 한 자루를 이고서 세 시간 동안이나 걸었던 엄마는 얼마나 목이 아팠을까요.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혜옥아, 고맙데이. 니가 돈이 오데 있다고 사과를 한 박스나 배달을 시키노? 사과가 참말로 달더라. 민이 어린이 집에 갈 때가 되마, 내가 한 반나절이라도 봐주꾸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엄마도 느긋하게 숨을 돌릴 때가 되었잖아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혜옥의 품에 두 살배기 민이가 뒤뚱거리며 달려와 폭 안깁니다. 달콤한 젖내를 풍기는 아이의 통통한 볼이 영락없이 사과를 닮았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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