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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누비라 착한 옷!

등록 2006-11-07 19:18수정 2006-11-08 13:29

여성환경연대의 공정무역숍 ‘희망무역’에서 판매할 여성복들. 박영숙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회갈색과 꼭두서니빛으로 물들인 실로 짠 윗도리, 맨왼쪽), 이은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종이옷 천연염색, 왼쪽에서 두번째)과 여성단체 활동가 등이 함께 모델이 됐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성환경연대의 공정무역숍 ‘희망무역’에서 판매할 여성복들. 박영숙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회갈색과 꼭두서니빛으로 물들인 실로 짠 윗도리, 맨왼쪽), 이은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종이옷 천연염색, 왼쪽에서 두번째)과 여성단체 활동가 등이 함께 모델이 됐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3세계 소외층 살리는 ‘희망무역 패션쇼’ /

행사장엔 아마추어 ‘모델’ 36명의 워킹이 이어졌다. 박영숙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 아름다운재단 윤정숙 상임이사, 이은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여성 명사들이 새옷을 입고 날개가 달린 듯 무대를 거닐었다.

지난 1일 서울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대강당. 11월 중 여성환경연대가 인터넷에 문을 열 페어트레이드(공정무역)숍 ‘희망무역’의 제품을 소개하는 패션쇼였다. 이날 주인공은 모델들이 아니라 그들이 입은 옷. 한눈에 봐도 은은한 색채감에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돋보였다.

이 옷은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착한 옷’이다. 생산자는 네팔, 인도, 캄보디아, 베트남의 여성과 장애인들. 네팔의 물건이 가장 많다. 제3세계에서 태어나 가난을 대물림해가며 살아온 이들에게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주고 사온 제품들이다. 옷 입는 사람에게도 좋다. 전 세계에 뿌려지는 농약의 4분의 1이 면화에 뿌려진다고 하지만, 이 옷들은 ‘유기농’(organic) 마크를 단 면이나 마로 만들었다. 약초 재배를 많이 하는 제3세계 여성들이 각종 식물에서 직접 채취한 염료로 물들여 새옷 특유의 역한 화학약품 냄새도 나지 않을뿐더러 피부에도 순하다. 전통 직조 기술을 써 생산량이 적으면서 품은 많이 들지만 ‘처음 입어도 1년 된 듯’ 착용감이 부드럽다.

패션쇼장에는 박영숙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회갈색과 꼭두서니빛으로 물들인 실로 짠 윗도리·윗사진 맨왼쪽), 이은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종이옷 천연염색·윗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과 여성단체 활동가 등이 함께 ‘모델’이 됐다.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패션쇼장에는 박영숙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회갈색과 꼭두서니빛으로 물들인 실로 짠 윗도리·윗사진 맨왼쪽), 이은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종이옷 천연염색·윗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과 여성단체 활동가 등이 함께 ‘모델’이 됐다.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품 하나하나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것도 특징. 이은영 의원이 입은 종이옷은 제일 큰 관심을 끌었는데, 네팔 여성 사루미나와 당고루가 종이를 꼬아 만든 천으로 천연 염색한 뒤 바느질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얇은데도 너무 따뜻하고 가볍다”고 했다. 여성환경연대 이미영 사무처장은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시원한 느낌을 주고, 몸이 냉한 사람에게는 따뜻해서 ‘마술 같은 옷’이란 별명이 붙었다”고 덧붙였다. 가방이나 바짓단에 수놓인 자수도 역시 모두 네팔 여성들이 손으로 직접 기워 만든 전통 문양이다.

이 옷들 가운데 다수가 일본 공정무역 단체인 ‘네팔리 바자로’의 제품들. ‘희망무역’은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네팔리 바자로의 옷과 홈데코 등을 국내 첫 판매하기로 했다. 쓰치야 하루요(52) 대표가 15년간 하루 3~4시간을 자며 디자인하고 네팔 여성들을 격려해가며 만든 것들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갈 만큼 힘들었다”는 그의 공정무역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정무역이란 - 경제활동으로 제3세계 빈곤문제를 해결하려는 사 회적 기업·소비 운동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 옷 한벌이 네팔 여성을 웃게 해요”

착한옷 만드는 ‘네팔리 바자로’ 쓰치야 하루요 대표

쓰치야 하루요 네팔리 바자로 대표(앞)와 우시쿠보 쓰치야 간지 주디렉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쓰치야 하루요 네팔리 바자로 대표(앞)와 우시쿠보 쓰치야 간지 주디렉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갈수록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여성환경연대의 초청으로 지난 1일 한국을 방문한 ‘네팔리 바자로’(nbazaro.org)의 쓰치야 하루요 대표.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는 모습이 더없이 예절 바른 일본인이다. 네팔리 바자로는 연 매출액 2억3천만엔을 올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정무역 기업이다. 직원은 17명으로 비록 적지만 수만명에 이르는 소비자, 생산자 모두가 네팔리 바자로의 주인이다.

여성환경연대는 11월 안에 공정무역 사업으로 ‘희망무역’을 시작하면서 네팔리 바자로의 물건들을 베트남, 타이, 캄보디아의 수공예품과 함께 공급하기로 했다. 쓰치야 대표는 15년 동안 자신이 일궈온 ‘영업 비밀’을 여성환경연대에 일러줬다. “한국 여성들은 나 같은 시행착오를 줄이길 바란다”면서.

쓰치야 대표는 1992년 혼자 이 회사를 설립했다. 평범한 일본 중산층 아주머니로 살던 그는 “집, 직장, 학교 학부모회 어디서도,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30대 중반, 인도차이나 난민의 참상을 다룬 책 〈인간의 대지〉(이누카이 미치코 지음)를 읽고 괴로움의 실마리를 알게 됐다. “동시대에 태어나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가난한데 그 사실을 외면하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그들의 대물림 가난 안타까워 창업, 현지인이 직접 짠 제품 일본에 팔아…
500개 일자리 3천명 먹여살려… 자나깨나 이익 최대한 돌려줄 고민

공정무역기업 ‘희망무역’의 “착한옷”
공정무역기업 ‘희망무역’의 “착한옷”

일본에 들른 한 네팔 여성을 통해 네팔 여성 대다수가 가난을 대물림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현지로 날아간 그는 맨 먼저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단속하는 일본 분위기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마구 뒤섞인 시장, 잘 웃고 잘 싸우는 네팔인들, 아름다운 직물들과 섬세한 직조기술을 지닌 여성들…. 그는 “네팔은 사실 훌륭한 문화를 지닌 나라였고, 네팔인들은 장인들이었다”고 했다. “풍족한 나라 사람인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뭔가를 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눈치 채고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마음만큼 일이 따라주지 않았다. 인도와 중국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라 운송도 힘들었고, 다민족 다언어 국가라 사람 사이의 협동이 어려웠다. 눈 높은 일본 여성들의 마음에 쏙 들 만큼 꼼꼼한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생산자들이 아무리 실수를 거듭해도 참고 인내로 설득해야 했다. 가족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춘기였던 큰딸은 마음에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았다. 함께 사는 ‘파트너’인 우시쿠보 디렉터도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쓰치야 대표는 “비행기를 탈 땐 늘 이 괴로움을 겪지 않고 사고로 죽기를,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했다.

특히 94년 유기농 커피를 팔 때는 아무리 팔아도 수지가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영난에 직원이 모두 나갔고, 커피 한 봉지를 팔겠다고 500㎞나 되는 거리를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노력 덕분에 일반 수매가격의 몇배나 되는 수익을 농민에게 돌려줄 수 있었고 농민들은 더는 커피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됐다. 올해 초 판매를 시작한 ‘로쿠타’ 나무의 종이옷은 만드는 데 5년이 걸렸지만 실뽑기, 염색, 직조, 단추 달기 등 작업이 많아 일자리가 더 늘게 됐다. ‘네팔리 바자로’ 덕분에 네팔엔 상시적으로 500여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확보됐고 3000여명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현재 네팔의 일본 수출품 절반 이상이 ‘네팔리 바자로’의 물건들이다.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8달러지만 네팔리 바자로 생산자들은 대부분 이보다 많은 소득을 올린다.

예나 지금이나 쓰치야 대표가 가장 바라는 일은 생산자가 행복해지는 것. “네팔에서 늙은이 취급을 받던 39살짜리 네팔 여인이 일본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즈음엔 얼굴에서 빛이 났다”면서 웃었다. 그의 곁에서 우시쿠보 쓰치야 간지 주디렉터가 말했다. “쓰치야 대표는 지금도 하루 5시간밖에 잠을 안 자요. 자나 깨나 생산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밖에 안 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빈곤여성 돕고 환경제품 쓰고 ‘희망무역’은 ‘행복무역’입니다

■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는 13억명인데 그 가운데 70%가 여성입니다. 아시아 빈곤 여성을 도우면서 환경친화적 제품도 쓸 수 있어요. 땅과 사람, 모두에게 좋은 ‘행복무역’이 될 겁니다.”

■ 이상은 가수·희망무역 홍보대사

“희망무역은 제3세계 여성들의 전통 기술을 살리면서 정당하게 값을 쳐주고 물건을 사는 소비·생산·무역 운동입니다. 생산자의 자긍심을 높여주면서 품질 높은 제품을 쓸 수 있어요. 우리도 먹고살 만해졌으니 다른 나라에도 눈을 돌려야겠죠.”

■ 이미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재배부터 완제품까지 인체에 전혀 유해한 물질이 없다고 보장받은 제품을 판매합니다. 내년엔 ‘스토리 위빙’이란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직접 생산합니다. 다국적 기업의 저임금 횡포에서 벗어난 옷이야말로 당신에게 ‘진짜 명품’이 될 것입니다.”

공정무역기업 ‘희망무역’

11월 안으로 문을 여는 희망무역은 유기농 면 의류를 주요 품목으로 개발할 예정. 배냇저고리, 기저귀 등 영유아 제품과 내의와 아동복 위주의 어린이 제품, 다양한 티셔츠와 속옷 등의 성인 제품도 선보인다. 그밖에도 오일, 잼, 말린 과일, 카레, 향신료, 비누 등도 만날 수 있다. 먹거리는 모두 무농약·유기농이고 옷과 패브릭 제품도 농약이나 화학약품을 전혀 쓰지 않는 천연 재료로 만든다. 액세서리, 소품 등도 예쁘면서 고급스럽다.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는 식품은 맛있고 안전하고, 옷은 정중하게 만들어져 착용감이 좋고, 손수 만든 잡화는 마음을 치유합니다. 공정무역은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서로 이득이 있는 활동입니다.”(이미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여성환경연대, 이달 인터넷숍 열어… 무공해 성인옷·아기옷·먹거리 팔아…

희망무역에서는 네팔리 바자로의 의류와 홈데코, 향신료 등 70여가지 물품도 들여와 판다. 네팔리 바자로는 희망무역의 거울이기도 하다. 직거래 회원 4000명, 도매점 500개, 직영가게, 인터넷 쇼핑몰을 갖출 만큼 성장한 네팔리 바자로는 이미 400여종의 제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한편, 희망무역은 현재 지분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02-722-7944, ecofem.or.kr 희망무역팀)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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