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배낭에 카메라를 담지 않는다. 기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에도 별 눈길을 주지 않고 핸드폰도 사진 기능이 없는 것을 가지고 다닌다. 디카와 카메라폰 등으로 사진 찍기가 일상의 일이 된 요즈음의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 순간을 사진 찍느라 놓치기 싫다는 이유가 더 크다. 사람들은 공연, 행사, 관광지 등 곳곳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핸드폰과 디카를 꺼내 플래시를 터뜨리며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한다. 난 카메라렌즈가 아닌 맨눈으로 그 순간에 놓여 있고 싶다. 작년 가을 행복하게도,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일출의 장관을 보게 되었다. 해가 뜨는 짧은 순간에 주변의 많은 이들이 사진 찍느라 바빴다. 난 카메라가 없으니 그냥 온전히 순간에 집중하고 그 풍경 속에 나를 몰입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충만한 느낌이 참 소중하다. 우리는 노래방이 없었을 때 노래 가사를 더 잘 기억했고, 핸드폰이 없었을 때 전화번호들을 더 잘 기억했다.
지난여름 아이와 함께 문경새재로 여행을 갔다. 기차와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전라도에서 문경까지 가니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질 무렵이었다. 아이와 둘이서 맑은 여름날 어스름에 문경새재 제1관문까지 천천히 산책을 했다. 영남대로 제1관문 뒤로 펼쳐진 백두대간 산자락이 참 아름다웠고 길은 한적했다.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몇개의 선으로 풍경을 담아보았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이후 스케치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몇개의 선으로 내가 본 것을 표현하고 나니 참 기분이 좋았다. 투박하고 유치하지만 풍경 속에 온전히 내가 있었던 느낌이 되살아나서 가끔 그 수첩을 꺼내들고 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곤 한다. 비록 사진들을 남기진 못했지만 내게 애착이 가는 풍경 하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또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천천히 풍경 하나씩을 새겨 가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또 생각한다. 있어서 편한 것이 있다면 없어서 자유로운 것도 많다는 것을. 플러그나 건전지가 있어야만 기능을 하는 것들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래서 더 자유롭다고.
김미정/광주 서구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