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책과 놀자
“토요일에 속이 많이 상하셨죠? 제가 크게 혼을 냈어요. 아이가 반성문을 썼네요.”
엄마가 내민 반성문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무려 에이4(A4) 용지 5쪽에 걸쳐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도서관 선생님, 짜증내서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는 내용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적혀 있었다.
‘그 토요일’ 아이와 함께 그림책 만들기를 했었다. 예쁜 천으로 겉장을 만들고 속지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아 그림책을 만들었다.
“너 게임 좋아하지? 게임책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권의 게임책을 만들어 내는 아이, 그림으로만 여러 장을 완성하는 아이, 주몽을 재미있게 봤다면서 역사책을 만들어 내는 아이 등 모두들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선생님, 시를 써도 되나요?”
“그럼!”
그래서 민수(가명)는 시 그림책을 만들었다. 함께 온 동생과 즐거운 표정으로,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팔로 가리면서도 열심히 글을 썼다.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 다 된 사람은 확인을 받은 뒤 집에 가도록 했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어디까지 했는지 한번 볼까?”
“싫은데….”
싫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내 손에는 이미 동시책이 들려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관한 동시를 한 편씩 잘 써 놓았다. “잘 썼는데” 하면서 얼굴을 보는 순간 ‘아차’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는 몹시 불쾌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어 화났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잘못했다. 보여주기 싫었는데 내가 함부로 봤구나. 정말 미안해.” 사과는 했지만 이미 글을 본 뒤였기에 후회하고 사과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척 무안해하는 나를 보며 민수 엄마도 아이에게 화를 풀라고 거들었지만 민수의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그 상태로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뒤에 엄마가 들고 온 것이 민수의 반성문이었다. “아이가 너무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했어요. 자기가 잘못한 줄 금방 알면서도 쉽게 사과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고쳐지지 않네요. 그날 돌아가서 많이 야단쳤어요.”
반성문을 읽는 내내 아이가 싫다고 했음에도 빼앗아 읽은 나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어른으로 아이에게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권력을 휘두르는, 내 몸에 밴 권위에 대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나도 그 아이에게 그가 쓴 분량만큼의 반성문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연스럽게 보여줬을 때 봤어도 될 내용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나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아이에게 어떻게 사과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어른의 마음은 늘 아이보다 앞서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동등한 입장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이 많은 어른이 갖는 권위가 버릇처럼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른과 아이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도 잘못한 줄 알면서 쉽게 아이에게 사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박소희/인천어린이도서관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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