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끼니도 모자랐지만”
60대, 연대에 1억원 쾌척 경기도에 사는 한 60대 할머니가 아무 연고도 없는 연세대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연세대 대학본부 관계자는 4일 “지난 1일 오후 60대 후반의 정아무개씨가 혼자 무작정 연세대 캠퍼스를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다”고 말했다. 교정을 지나던 한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학교에 전달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해 이 학생의 안내로 대학본부를 찾아온 정씨는 5천만원과 4천만원 짜리 수표 각각 한장과 100만원짜리 수표 등 모두 1억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뜻밖의 온정 소식을 듣고 달려나온 김한중 연세대 총장과 만난 정씨는 “그동안 내가 어렵게 살았는데 최근에 내가 사는 곳이 재개발 돼 토지보상금을 받게 됐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하늘에서 복이 내릴 것”이라며 감사를 표하자 정씨는 드문드문 살아온 얘기를 털어놓았다. 결혼초 임신했을 때 쌀을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잘 먹지 못한 탓에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가 힘들다고. 그렇지만 1만원도 갚을 능력이 없는 형편이어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던 정씨는 자식 세 명을 대학에 못보낸 것이 못내 한스럽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할 뿐 한사코 기부 사실도 신분도 밝히지 말아 달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고교때 도움 갚으려고”
30대, 완도고에 장학금 어촌 고교에서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한 졸업생이 16년 만에 보은의 장학금을 모교에 보내 감동을 주고 있다. 전남 완도고는 4일 “지난달 하순 한 졸업생이 적으나마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전화를 걸어왔다”며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 뒤 감사 편지와 전신환 100만원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완도고는 이 졸업생의 뜻에 따라 15일 학생·교사·학부모 대표가 추천한 학생 3명한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1992년 졸업한 30대 중반의 최아무개씨.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동화책을 활용한 직업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최씨는 편지에서 “학창시절 가난한 형편 때문에 수업료를 내지 못하고 다녔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장학금을 받았다”며 “장학금을 준 담임 문재규 선생님이 늘 생각나 땀흘려 모은 보수의 일부를 후배들과 나누기로 했다”고 썼다. 또 “조회시간 이름이 불려졌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고 장학금을 받아 자리로 돌아갈 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성적이 좋지 못해도 성실하게 생활하는 학생들한테 전달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완도고는 지난달 29일 이 졸업생의 따뜻한 사연을 학교 누리집에 올려 안팎에 알렸다. 최기상 교장은 “교단에 선 지 40년이 지났지만 이런 아름다운 편지는 처음받아 보았다”며 “허락을 받지 못해 주소와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60대, 연대에 1억원 쾌척 경기도에 사는 한 60대 할머니가 아무 연고도 없는 연세대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연세대 대학본부 관계자는 4일 “지난 1일 오후 60대 후반의 정아무개씨가 혼자 무작정 연세대 캠퍼스를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다”고 말했다. 교정을 지나던 한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학교에 전달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해 이 학생의 안내로 대학본부를 찾아온 정씨는 5천만원과 4천만원 짜리 수표 각각 한장과 100만원짜리 수표 등 모두 1억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뜻밖의 온정 소식을 듣고 달려나온 김한중 연세대 총장과 만난 정씨는 “그동안 내가 어렵게 살았는데 최근에 내가 사는 곳이 재개발 돼 토지보상금을 받게 됐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하늘에서 복이 내릴 것”이라며 감사를 표하자 정씨는 드문드문 살아온 얘기를 털어놓았다. 결혼초 임신했을 때 쌀을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잘 먹지 못한 탓에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가 힘들다고. 그렇지만 1만원도 갚을 능력이 없는 형편이어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던 정씨는 자식 세 명을 대학에 못보낸 것이 못내 한스럽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할 뿐 한사코 기부 사실도 신분도 밝히지 말아 달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고교때 도움 갚으려고”
30대, 완도고에 장학금 어촌 고교에서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한 졸업생이 16년 만에 보은의 장학금을 모교에 보내 감동을 주고 있다. 전남 완도고는 4일 “지난달 하순 한 졸업생이 적으나마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전화를 걸어왔다”며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 뒤 감사 편지와 전신환 100만원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완도고는 이 졸업생의 뜻에 따라 15일 학생·교사·학부모 대표가 추천한 학생 3명한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1992년 졸업한 30대 중반의 최아무개씨.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동화책을 활용한 직업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최씨는 편지에서 “학창시절 가난한 형편 때문에 수업료를 내지 못하고 다녔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장학금을 받았다”며 “장학금을 준 담임 문재규 선생님이 늘 생각나 땀흘려 모은 보수의 일부를 후배들과 나누기로 했다”고 썼다. 또 “조회시간 이름이 불려졌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고 장학금을 받아 자리로 돌아갈 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성적이 좋지 못해도 성실하게 생활하는 학생들한테 전달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완도고는 지난달 29일 이 졸업생의 따뜻한 사연을 학교 누리집에 올려 안팎에 알렸다. 최기상 교장은 “교단에 선 지 40년이 지났지만 이런 아름다운 편지는 처음받아 보았다”며 “허락을 받지 못해 주소와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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